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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당신의 이웃 vol 1. 변호 (범죄)

당신의 이웃 (2)

by 구운체리 2021. 10. 27.

 당신도 알다시피 김한은 사람을 죽였다. 아니, 사람들을 죽였다. 대부분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김한의 손에 죽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김한이 사랑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김한은 앞선 문장에 사용된 두 번의 ‘사랑했던’이 ‘사랑하는’이라는 현재형으로 쓰이기를 원했다. 최소한 후자는 판단하는 주체가 김한 본인이니 그렇게 써도 틀리지 않겠지만, 전자의 경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달라. 남겨진 이들이 듣고 있다.
 어쨌든 이 글에 쓰인 모든 문장이 옳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김한은 그렇게 생각한다, 즉 그의 손에 죽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이 글은 본래 김한을 담당했던 변호사가 기획한 탄원서에서 시작되었다. 탄원서 원본이 완성된 적은 없다. 알다시피 김한의 사건은 모든 매스컴이 앞다투어 다루고 싶어하는 최고 인기의 재료였다. ‘김한비난록’이라는 장르가 생긴 것처럼 매달 새로운 희생자가 드러날 때마다 각종 언론사 및 넷 상의 인플루언서들은 앞다투어 백일장을 열고 펜촉과 혓바닥의 매서움을 겨루었다.
 그를 맡은 변호사들이 공적인 책무를 넘어 사적인 영역까지 파고든 공격을 버티지 못한 이유이다. 대중의 몽둥이는 변호와 두둔을 구분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어느 해커가 김한의 마지막이었던 국선변호사의 인터넷 접속기록에 남아있는 리벤지 포르노를 발견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그의 몰락을 지켜본 김한은 더 이상 변호인을 요구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자신의 형량을 깎는데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협조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를 담당한 변호사들의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오히려 죄질 대비 순종적이고 정중하고 협조적인 피고인이었다. 게다가 사소한 많은 것들을 기록해두는 편집증적인 습관까지 있던 것이 일관된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니 그런 쪽으로는 일하기 편하다는 말까지도 나왔다.
 다만, 도무지 그 내용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사회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사임의 이유였다. (이미 언론을 통해 충분히 알려졌지만) 마지막 변호사는 결국에 자살했다. 스스로의 고통은 버텨낼 수 있었지만 그의 자식들이 받는 피해만큼은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김한은 그를 인격적으로 존경했고 인간적으로 사랑했다고 회고했다. 김한이 사랑한 사람들은 끝이 안 좋다. 그 변호사가 자살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타살을 당한 데에 김한은 도의적인 책임감과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튼, 김한은 이 글이 완성되기를 원했다. 스스로 이해받고자 하는 욕망이 반영된 것인지, 그가 마지막으로 존경했던 인물의 유작으로 여겼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 이 글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변호사, 김한, 그리고 그것을 재해석한 저자의 시선에 의해 탄생한 소설이다.
 이 글은 소설이다. 사소한 오류들이 발견된다면 소설적 허용으로 이해해달라.

 김한에 대한 직접적인 분노를 견딜 수 없다면 그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마지막 장에 가감없이 서술해둘테니 (혹은 관련 이슈를 자극적으로 다룬 SNS 글들을 참고해도 좋다) 중간의 서사들을 건너뛰는 것을 권고한다. 밝히건대 이 글은 김한을 변호하는 목적은 아니지만, 이미 세간에서 다룬 것 이외에 그를 비난할 타격점을 공유하기 위한 글은 더더욱 아니다.
 그를 이해해달라거나 용서해달라는 의미는 아니다. 용서는 당신의 몫이 아니고, 당신의 이해는 내가 고려하고자 하는 몫이 아니다. 그저 이런 사람이, 당신의 이웃으로 살다 갔다는 것을 보다 정확히 알려주고자 함이 목적이다.
 아니, 당신의 이웃에 살다간 이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가 그저 그렇게 태어난 무언가가 아닌, 나름대로 만들어진 한 명의 사람이었다라는 것.

 그렇다고 김한의 범죄내용을 미화하거나, 혹은 (일부 매체가 그러했듯 – 근데 당신들도 언론입니까?) 그저 건조하게 사실적시를 한다는 명분으로 사건에 대한 불필요한 상상력 또는 환상을 재생산하려는 의도는 본 글과 완벽히 반대된다.

 감히 경고하자면, 그런 식으로 타인의 고통을 재밌는 구경거리 정도로 가볍게 소비하는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바라건데 당신의 말년도 아름답지 못할 것이야. 이 글이 그러한 관음증의 산물 정도로 평가받지 않기만은 간절히 바라며, 그럼에도 필자의 통찰이 부족해 어쩔 수 없는 흠결이 발견된다면, 겸허히 다가올 대가를 감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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