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편 연재/당신의 이웃 vol 1. 변호 (범죄)

당신의 이웃 (5)

by 구운체리 2021. 10. 30.

 김한은 총 열여섯 명의 여성과 연인관계를 맺었고 그 중 열세 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다. 진지하게 마음을 나눈 여성은 그 중 일곱이었으며, 모두 김한에게 살해당했다. 이외에 김한은 네 명을 더 직접 죽였고, 그의 양친과 변호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까지 포함해 총 열네 명에게 생명의 빚을 졌다. 열한건의 직접 살인 중 일곱 명 모두는 김한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사랑하기에’ 죽였고 나머지 넷은 그 살인을 ‘완성하기’ 위해 죽였다.
 후자의 살인에 대해 김한은 깊은 반성과 후회의 빛을 보였다. 시간을 되돌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 넷 만큼은 죽지 않게 하고 싶다고 했다. 달리 말해,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인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는 것이다.
 대학 이후로 김한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저마다 조금씩 달라 유의미한 프로파일을 얻어내기 어려웠다.
 눈에 띄지 않는 특기는 군대에서 그를 최고로 만들어주었다. 그와 군생활을 함께한 선후임들과 간부들은 입을 모아 그를 최고의 장병으로 칭송했지만, 이름이 두 글자라는 것 이외에 어떤 특이점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이 말하는 최고의 장병이란, 시키는 일도 안 시킨 일도 적당히 잘하면서 아무 잡음 내지 않는 존재감 없는 노예라는 뜻이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개인적인 기억의 조각이 있는 맞후임은 그가 관물함에 붙여놓은 사진으로 짐작하여 김한에게 연인이 있겠거니 했지만, 편지가 한 번도 오지 않아 아닌가 싶었다고 한다.
 그와 사귀었으나 진지한 단계로 발전하지 않았던 생존 여성들은 대개 두 달 이내에 관계를 정리했다고 했으며, 그 중 두 명을 만나볼 수 있었다.
 우씨는 우연히 바에서 만나 하룻밤을 보냈는데, 질척거리지 않는 파트너가 필요하던 참이라 한 달 간 관계를 이어가다 지루해지자 헤어졌다. 김씨는 교양 수업에서 그가 쓴 쪽글에 감명을 받고 몇 번 식사를 하며 소소한 삶을 공유하는 데이트메이트 정도의 사이로 지내다 김한이 군대를 가며 헤어졌다. 둘 사이에 입술을 맞대는 것 이상의 스킨십은 없었으며 그녀는 순수한 문학청년 정도로 김한을 기억했다.
 김한은 일곱 건의 살인과 연애를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증언했다. 그러나 가해자의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피해자를 기억하는 이들이 짊어진 무거운 공허를 다시금 헤집는 일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언급을 자제하였다. 당신께도 이에 대한 호기심을 거두어 주십사 감히 부탁드린다.
 설령 누구처럼 단순한 소설이라는 얕은 변명으로 도의적 공격을 피하여 그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해도, 김한의 문장은 어딘가 광기가 서려있고 논리구조도 혼잡하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시청자의 알 권리? 지랄하지 마세요 제발.
 일곱 명의 피해자는 각각 김한의 대학 동문 셋, 동네 친구, 임시 직장의 동료, 과외 학생, 그리고 채팅 어플을 통해 만난 임의의 여성이었으며 각기 다른 나이와 성격, 외모를 갖고 있다. 김한의 범죄를 연쇄살인이 아닌 연속살인으로 정의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 이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사람에 대한 의존성이 강해 연애를 열심히 하며 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는 것, 그리고 그 마지막 대상이 김한이었다는 것.
 연쇄살인은 대개 성적 욕구 분출과도 연관이 지어지지만, 김한은 성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관계 중에 살인을 저질렀다지만 동의하지 않은 관계를 맺은 적은 없다고 했으며, 관계 도중에 멈추어야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성을 낸 적은 없다고 한다.
 재판부와 여론의 판단은 달랐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 김한이 거짓을 말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그가 덜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과는 조금 다르게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다. 첫 경험의 충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김한이 섹스에 있어 능동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김한은 대학에 들어간 이후 3월의 어느 술자리에서, 만만한 먹잇감을 노리던 일곱 살 연상의 선배 원씨에게 찍혀 첫 경험을 당했다. 싸구려 모텔에 구비된 두꺼운 콘돔을 끼고, 얼떨떨한 상태에서 술 취한 원씨가 그의 몸을 장난감삼아 혼자 만족한 뒤 떨어져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고 한다.
 김한은 제풀에 지쳐 뻗어버린 원씨를 뒤로하고 화장실에서 자위를 한 뒤 집에 돌아오며 권씨에게 전화를 했고, 다음 날 만난 권씨는 이에 질세라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았지만 김한이 보기에 그것은 지어낸 거짓말 같았다고 한다.
 늘 그렇듯 황군의 욕을 하며 그들은 헤어졌다. 원씨는 김한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취업준비를 핑계로 몇 학기 더 학교에 머무르다 제적을 당하고는 사라져버렸다.
 김한은 일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으며, 그 사이에 원씨와 교양 수업의 김씨를 제외하고 세 번의 연애를 했다. 그 중 두 번째 연인과 제대로 합의된 첫 경험을 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 김한에게 인상적인 인연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김한의 살인은 제대 이후로 시작되었다.

'단편 연재 > 당신의 이웃 vol 1. 변호 (범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이웃 (7)  (0) 2021.11.01
당신의 이웃 (6)  (0) 2021.10.31
당신의 이웃 (4)  (0) 2021.10.29
당신의 이웃 (3)  (0) 2021.10.28
당신의 이웃 (2)  (0) 2021.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