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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당신의 이웃 vol 1. 변호 (범죄)

당신의 이웃 (4)

by 구운체리 2021. 10. 29.

 “김한의 당시 연애나 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김한이 다닌 중학교는 남자반 여자반이 구분되어 있었다. 한창 새로운 호르몬이 뿜어나던 김한과 친구들은 성적인 모든 것에 대해 끓는 욕망과 갈증이 있었지만 매력과 열정이 받쳐주지 못했다. 가만히 앉아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만큼 매력적이지는 못했고, 스스로 무언가를 이끌어내려는 행동력도 부족했다.
 그들의 성적 농담은 공허한 투기에 그쳤다. 권씨와 김한은 비교적 일찍 올바른 성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의 친구 황군은 아기가 여자 배꼽에서 나오는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졸업할 즈음에서야 친구들은 황군이 농담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성교육에 대한 사명감을 느낀 그들은 권씨의 집에 모여서 적나라한 포르노를 함께 감상했고, 그것을 계기로 친구들은 다시 함께 모이지 못했다. 황군이 자기가 본 내용을 부모님께 미주알고주알 보고한 탓이었다.
 그들은 또 모여서 각자 짝사랑의 대상을 꼽아보고는 했다. 권씨가 보기에 김한이 첫사랑이라고 주장하는 중학교 선배는 그저 친구들에게 대화거리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권씨는 김한이 스무 살에 첫 경험을 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까지 그를 동성애자로 의심했었다.
 김한이 좋아했다는 그 선배가 곧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성전환 수술을 받으려고 했다는 소문이 돈 것도 있지만, 그녀가 몇 반인지 등의 기본적인 정보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 시절 김한과 친구들은 서로 자신이 꼽은 짝사랑 상대를 이야기하며 상상 속의 연애를 펼쳤다. 애가 이미 둘인 영어선생과의 로맨스를 주장하던 황군을 제외한 나머지는 제법 진지했었다. 지금에는 그 대상이 누구였는지 기억들도 못하지만.
 권씨가 알지 못했던 한 가지는, 김한이 군대를 다녀온 직후 우연히 그 선배와 연락이 닿았고 잠시간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다는 것이다. 그 선배는 김한과는 무관한 자살을 기도했고, 실패한 이후로 다시 한동안 세상과 연을 끊으며 김한과도 멀어졌다.
 여담으로 그녀가 고등학교를 중퇴했던 것은 건강 상의 이유였으며, 머리를 바싹 밀었더니 그런 소문까지 나버린 탓에 다시 돌아갈 생각은 접었다고 했다.


 학창시절의 김한과 관련된 연애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이다. 김한의 소식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권씨는 마지막 증거와 자백이 나올 때까지도 그것을 믿지 못했다. 김한이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 있다는 사실도, 성인이 된 이후 수많은 연애를 했다는 사실도 그에게는 헛소리 같았다. 
 둘이서 연애에 관한 이야기는 종종 나누었지만, 권씨는 김한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양념을 섞었으리라 지레짐작하고 있던 것이다. 고백하기를, 그는 되려 김한에게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보탠 허풍을 종종 뽐냈다고 한다.
 현재 권씨는 그의 생에서 만난 두 번째이자 마지막 연인과 가정을 꾸렸으며 그의 아내를 제외한 여성과 섹스를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남성을 포함해도 마찬가지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말을 명시하지 않으면 입을 닫겠다고 필자를 협박했다.)
 김한의 모든 여성편력은 대학 진학 이후의 일이다. 김한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법 남자다운 구석이 생겼다. 체격이 건장해졌고 피부 관리를 시작했으며 안경을 벗고 머리 미용에 돈을 썼다.
 조금의 변화가 존재감 없던 김한을 세상으로 끌어냈다. 옅은 존재감은 무해함이라는 장점이 되어 여성들이 되려 그를 편하게 생각하였으며, 그가 집중하여 일을 마무리하는 모습은 책임감으로 다가왔고, 다독으로 쌓인 간접경험과 참을성이 그에게 깊이를 만들어주었다. 여전히 눈에 띄지 않고 매력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서서히 삶에 스며들어 닻을 내리는 모양으로 일부 사람들에게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좋아하는 정치인이 누구라는 것이 우연히 알려져, 학생운동 조직에서 그에게 잠시 눈독을 들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 정치인이 희대의 섹스스캔들에 휘말려 언급하기 무안해질 무렵 김한은 다른 연예인으로 관심을 옮겼으며 그 학생조직은 김한의 존재를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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