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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당신의 이웃 vol 1. 변호 (범죄)

당신의 이웃 (3)

by 구운체리 2021. 10. 28.

 김한에게 별명을 붙여준, 아니 그에게 별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사람 중 한 명을 찾아보았다. 그가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중퇴한 이후에도 주기적인 연락의 기록이 남아있는 인연은 집주인 등을 제외하면 네댓 명 남짓. 그 중 한명이자 중고등학교 동창인 권씨를 찾는 일은 어려울 것 없었다. 권씨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조건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한에 대한 첫 기억에서 부터 시작해봅시다.”
 김한의 첫인상을 권씨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물론 첫 기억은, 중학교 2학년 같은 반에 배정이 되고 첫 날 담임이 출석을 부를 때 갓 변성기가 지나 적응되지 않은 굵은 목소리로 ‘예에’하고 늘어지게 대답하던 잔상이라고는 하지만, 처음이라는 인상은 시간에만 의존하는 개념이 아니다. 첫사랑을 시간을 기준으로 정의한다면 사랑노래란 얼마나 지루할 것인지. 
 김한과 권씨는 도서관에서 주로 만났다고 했다. 김한은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권씨는 도서관에 딸린 부수시설 등을 좋아했다. 네다섯 명의 동갑내기 친구들이 여유시간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고정적으로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우연히 3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된 권씨와는 보다 인연이 길어졌다고 한다.
 당시에 어떤 계기로 함께 어울리던 무리 친구들 중 한 명이 글을 써서 공모전에 응모했고 김한의 지적을 반영한 공으로 작은 상을 타기도 했다는데, 김한에게 문학적인 안목이 있었던 것도 같다. 다만 김한 본인은 그다지 글을 쓰는데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글을 쓸 만큼의 자기 세계가 풍부하지 못했다는 것이 권씨의 판단이다.
 김한은 분명 다독자였을 뿐 아니라 제법 깊이 있는 책들을 탐독하는 취미가 있었으며, 지나간 세대의 거인들 또는 동시대의 위인들에 대한 동경이 깊었다. 아직까지도 제 돈 주고 사는 책은 딸에게 쥐어준 만화로 된 위인전 밖에 없는 권씨가 보기에 김한은 학자였다. 그렇게 학식이 깊은 인물이 어째서 국어성적은 그 모양이었고, 자기 색깔이 옅을 수 있었는지 여전히 의문이라고도 했다.
 다만 한 명의 인물에 충분히 깊게 매료된 적은 없다고 한다. 안목이 기가 막힌 것인지, 저주의 능력이 있는 것인지 김한이 선택한 인물들은 전부 끝이 나빴다. 이미 지나간 사람들의 공과 과는 그렇다 치더라도, 김한이 잠시나마 열광한 동시대의 정치인, 사상가, 연예인 등은 머지않아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으며 공인의 삶을 은퇴했다. 그래서 더더욱 본인의 사상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김한은 포기하지 않고 다음 사람을 찾아다녔으며, 변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자 했다.

 “김한은 폭력적인 사람이었나요.”
 김한과 권씨의 중고등학교는 면학환경이 양호했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분위기는 분명 있었다. 싸움 잘하는 일진들이 뚜렷한 위계를 과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힘의 권위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있었고 작은 규모의 폭력과 비행이 만연했다.
 김한은 힘이 약했고, 투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저 살아남기 위해 존재감을 지우는 초식동물의 전략이 아니라 애초에 타인의 투지를 흘려보내는 성질을 타고났다고 할까. 앞서 말했듯 김한은 괴롭히는 맛, 타격감이 없었다. 딱 한 번 체육복 상의를 도둑맞은 것을 제외하면 김한은 무난한 6년을 보냈다고 한다.
 권씨가 김한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던 유일한 폭력성은 그가 휴대전화 오락을 하던 어느 때였다. 김한은 결코 사치스러운 인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검소하거나 궁핍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휴대전화만큼은 한참 닳고 닳은 고물을 꽤나 오래 썼다.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데이터 조각들을 떠나보낼 수 없다는 낭만적인 이유에서란다. 몇 안 되는 연락처와 사진, 사소한 메모, 이제는 서비스마저 종료된 게임 로그들이 전부지만 김한은 그것을 놓고 싶어하지 않았다. 권씨는 그 대답을 처음에 오해하여, 김한이 선별적인 교우관계를 깊게 가져가는 것을 중시하는 인물이라고 판단해 그와 오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단다.
 그 휴대폰에는 유행이 한참 지난 기록게임이 있었는데, 김한이 그 기록을 세우는데 한창 열을 올릴 때가 있었다. 게임을 한다기보다 스스로 발견해낸 규칙을 반복 구현하는 노가다로 방망이를 돌려 깎는 장인이 되려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오래된 기계가 장시간의 발열을 견디지 못하고 전원이 나가버렸다. 불행은 제때 저장되지 못한 데이터가 날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버그가 든 건지 게임이 아주 초기화가 되어버렸다. 그간의 노동이 흔적없이 증발한 것을 납득하지 못한 김한은 말없이 열을 내며 주먹으로 가엾은 기계를 몇 차례 때렸다. 거의 유일하게 권씨가 그를 ‘저거 웃기는 또라이네’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드물지만 무언가에 열렬히 집중하던 것이 갑자기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들에 대해 김한은 감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 액정에 금이 갔는데, 이미 단종된 기종이라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낙담해서라고 한다. ‘저거 은근히 또라이네’ 권씨는 생각했다. 그 열정으로 공부를 했으면 하버드를 갔을 거라고 종종 비웃었다고.
 참고로 대학은 김한이 권씨보다 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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