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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당신의 이웃 vol 1. 변호 (범죄)

당신의 이웃 (6)

by 구운체리 2021. 10. 31.

 여기까지 김한의 프로파일은 살인범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가정환경이 확연하게 불우하지도 않았고 성 기능에 문제가 있거나 이상욕구를 숨기고 있지도 않았으며, 수가 조금 적지만 충분히 평범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군대에서의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었는가를 의심해볼만하지 않겠는가. 그와 함께 생활한 사람들의 평가가 일관되게 양호하면서도 모호하다는 점도 분명 부자연스럽다. 마지막까지 이 부분은 잃어버린 고리로 남겨둔 채 김한의 대답을 기대했지만, 그저 시큰둥하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미심쩍은 사건사고 기록도 존재하지 않으니 더 이상의 추측은 소설이다. 물론 이 글은 소설이지만, 필자는 상상력이 결핍된 인간이다. 모르겠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의심의 근거를 덧붙이자면, 김한의 기록하는 습관은 군대 이전부터 있었다. 제대 후 보다 기록의 체계가 다듬어지기는 했지만. 또 꽤나 기억력이 좋은 인물이다. 군 시절에 대한 기억과 기록이 모두 흐릿한 공백이라는 것을 개인적으로 믿을 수 없다.
 제대 이후의 김한은 보다 성장한 인간관계를 맺었으며, 첫 경험의 충격에서도 벗어나 능숙하게 기능을 수행했다. 그런데 김한이 과연 성적 끌림을 느끼는 인간이었는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의문이 있다.
 그는 분명 정상적인 성욕과 성 기능을 갖고 있었고, 이성에 대한 끌림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본인의 성경험에 대해 언급하는 문장들을 듣다보면 지나치게 시점이 초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끄러워서나 혹은 지나치게 무던한 반응이라기보다, 조카와 놀아주는 삼촌이 애정노동을 설명하는 듯 했다.
 즉, 상대방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의 기능을 사용하지만, 성적인 끌림으로부터 능동적인 욕구가 솟아 행동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였다. 일종의 무성애자로 분류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을 정도로. 앞서 말한 우씨는 김한이 먼저 관계를 요구하는 일은 없었다고 했다.
 문득 궁금증이 들어 김한에게 ‘만약 권씨가 당신과 성관계를 맺기 원했다면, 응했을 것인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권씨, 미안합니다.) 김한은 드물게 복잡한 감정의 반응들을 표정으로 드러내다, 진지한 질문임을 깨닫고는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모르겠다’는 것이 결국의 대답이었다.
 다시 말해, 김한은 연애관계를 완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섹스를 이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완성’과 ‘영원’은 김한에게 남겨진 뚜렷한 키워드였으며 김한의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단어들이다.
 그는 멘토로 삼던 정치인의 섹스스캔들과 연예인의 마약스캔들을 거친 이후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서 흥미를 잃고, 죽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요절한 사람들에 대해 흥미를 옮겨갔다. 영웅의 서사는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구절을 즐겨 인용하곤 했으며, 니체의 철학과 종교적인 가르침에 심취해 지낸 기간도 있었다.
 먼지처럼 흐릿하게 녹아있던 김한은 배경에 숨은 뱀처럼 차분하게 녹아있는 김한이 되었고, 살인마가 되었다.
 그는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섹스를 했고, 영원을 위해 살인을 했다. 그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에게 살인은 박제의 행위였다.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진심으로 깊어지고 절정에 올랐을 때, 그 순간의 기억을 물리적인 표본으로 따서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고 믿었다.
 완벽함과 영원함에 대한 집착과, 소유에 대한 강박이 어딘가 알 수 없게 어긋난 그의 기질과 맞물려 사회에 비극을 낳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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