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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편 연재/6월의 장미, 캘리포니아 Part 1. (일상, 관계)

6월의 장미, 캘리포니아 1부 - (6)

by 구운체리 2021. 12. 17.

6.
 예진의 거짓말, 민영의 자해, 지윤의 테니스에 대한 몰두는 닮은 구석이 있었다. 본래의 자신으로부터 되고 싶은 자신으로 탈출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자기 파괴적인 욕망이 함께했다. 셋 모두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파괴가 아닌 초월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도 같았다. 예진은 어린 시절의 가장 소중했던 기억들만큼은 건드리지 않았고 가족사에 대한 자신의 거짓말이 행여나 돌고 돌아 부모님께 들어갈까 마음을 졸였다. 그녀의 수다스러운 성격에는 그런 정보의 과잉형성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도 한 몫을 했다.
 민영은 결코 목숨에 지장이 갈 정도로 자기 자신을 망친 적이 없다. 그저 고통을 되새기고 죽음의 문턱 언저리에서 신세한탄 정도를 할 뿐이지, 언제나 어떻게든 살아 돌아올 수 있는 안전장치들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종종 자살에 대한 계획을 꾸미고 직접적인 준비를 하는 등 위태로운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세상이 먼저 그녀를 등 떠 밀지 않는 한 실행에 옮길 일은 없을 것이었다.
 지윤은 종종 죽음의 감각을 되새긴다. 가끔 악몽을 꾸는 때마다 폐에 물이 차오르고 정신이 아득해져가며 영영 돌아올 수 없는 편도행 열차에 실수로 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끼곤 한다. 흰 옷을 입은 여자가 물에 빠진 다섯 살의 자신을 구하지 않고 멍하니 바라만보고 있다. 탁한 바닷물에 가려 그녀의 표정이 당황인지 행복인지 그저 멍한지 알 수가 없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빨간 실루엣과 고함소리가 다른 세상에서 오는 것처럼 웅웅거리고, 그녀는 구조된다. 심한 우울증을 앓던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거의 죽일 뻔했다.
 그날 이후로 지윤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부지런하고 또 조용해졌다. 밖에서는 의젓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가끔은 어린애답지 않게 말수가 너무 적은데 혹시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어머니는 사과를 하지도 않았지만, 그녀가 살아난 것을 아쉬워한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 일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했고, 지윤도 그 일이 그저 생생한 악몽이었나 생각할 때가 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 같다.
 어른들은 어머니가 수영을 할 줄 모르고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사고에 대응하지 못하고 그저 서 있던 것이라고 결론냈고, 기존의 우울증과는 별개의 일로 그 사건을 판단했으며, 다섯 살의 기억은 곧 지워질 것이라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그날 어머니의 표정을 보지 못했고, 어머니는 평소에도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긴 했을지언정 딸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물리적인 학대를 가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 좀 가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말썽을 피우다 발을 헛디딘 것은 지윤의 짓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만큼, 버둥거리며 팔다리를 휘젓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고목과도 같이 뻣뻣한 응시의 몸짓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떤 꿈에는 그 가려진 표정마저 생생하게 되살아나기도 하는데, 그것만큼은 상상 속의 것인지 실제 기억인지 확신이 없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죽어버려라.’

 죽음과 관련된 공포가 몸을 짓누르는 압도감을 아는 지윤은 자해를 하지 않았다. 자기 발로 그 앞까지 걸어갔다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무력감에 한 번 더 무너지는 좌절감만을 느끼게 될 것임을 알았다. 그런 자신을 비웃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열 세 살의 지윤은 학교에서 진행한 우울증 자가진단 검사에서 제법 심각한 결과지를 받았다. 그녀를 질투하던 짝이 그것을 채가서 읽더니 종례 때 모든 친구들이 듣는 앞에서 선생님께 일러바쳤다. 우울증에 걸린 것이 대단한 말썽이라도 피운 것이라는 듯이. 익살스러운 그 말투와 지윤의 평소 반듯한 이미지 때문에 아이들은 재밌는 농담이라도 되는 양 와 하고 웃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면서도 지윤에게는 어머니께 꼭 보여드리고 서명을 받아오라고 했다. 반 아이들 모두가 듣는 앞에서.
 어머니는 그녀의 우울을 본인의 것과 비교하며 비웃었다. 그때 지윤은 자신의 마음이라는 어두운 바다에 빠져 꼬로록거리는 기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기분만이 아니라 실제로 몸이 안 좋아져 앓아 누웠고 어머니는 시위하는 꾀병이라며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마음 몸살을 스스로 이겨낸 후로부터 지윤은 체력을 기르기 시작했다.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삶의 탈출구를 찾아야했다.
 그녀는 그때부터 짬이 날 때마다 운동장을 뛰었다. 성장기의 무릎 관절에 무리가 올만큼 뛰다보니 다른 운동을 찾아보라고 질책에 가까운 권유를 받았다. 수영이나 근력운동 위주로 하라고. 지윤은 의외로 물 자체에 대한 트라우마는 없었지만, 오히려 주변 다른 어른들이 그녀를 의식적으로 수영장이나 바다에 가지 못하게끔 했다.
 물가에 가지 않으면 수영은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배우기 시작한 요가와 필라테스 덕에 지윤의 몸은 속근육부터 단단하게 단련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체육 과목에서 테니스를 접했는데, 재미도 있고 힘도 세지고 사람이 아주 죽어나는 운동이었다. 스스로의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지윤은 자신의 껍데기로부터 탈출했다. 이러다 죽을 수 있다면 그건 행복한 죽음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스포츠는 의욕과 노력보다 타고난 신체와 감각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지윤은 끝내 아마추어 이상의 실력을 갖지 못했고, 그놈의 지겨운 공놀이에 미쳐버렸냐는 어머니의 핀잔에 그나마의 즐거움도 잊고 살았었다. 그러다 우연히 미국에서 그 맛을 다시 봐버렸고, 이기는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못한 게 아니라, 한국에서 그걸 전공으로 하는 친구들이 너무 잘하는 거였구나.
 미국에서의 삶은 모국과 가정, 특히 모성으로부터의 탈출의 의미가 있었지만 타지에서의 뿌리 얕은 삶은 그 나름대로의 우울감을 주는 면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두고 온 줄 알았던 한국에서의 평판들과 악몽의 기억들이 되살아나 눈물도 없이 우는 기분으로 뜨는 해를 지켜보곤 했는데, 테니스와 술로 몸을 아주 죽여 놓으면 그런 일이 없었다. 그로 인해 성적은 조금 떨어졌지만 장학금을 유지할 만큼은 되었고, 학기말 학장과의 면담에서도 체육인의 모습이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해 평판 또한 좋게 관리되었다. 학장은 유명 테니스 선수 조코비치와 찍은 사진을 자랑하며 자신과 조만간 한 게임 뛰자고 했다.
 그래서 지윤은 한참 뒤 어느 날 한국인 커뮤니티 내에 본인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아다닌다는 것에 대해 매우 황당하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소문을 친구들이 아닌 어머니로부터 건너들었다는 것에는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