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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당신의 이웃 vol 2. 변명 (범죄)

당신의 이웃 vol.2 - (1)

by 구운체리 2022. 1. 11.

1.
“도와달라고는 안 해. 방해는 하지 마.“
예슬이는 다리 난간에 걸터앉아 나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나는 도와줄 생각도, 방해할 생각도 없다. 그저 그녀가 빨리 내 앞에서 사라져주었으면 하는 생각 밖에는 없다. 어둠과 짙은 화장 뒤어 숨어있어도 영락없는 고등학생이다. 명찰 달린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았더라도 알았을 것이다. 그녀는 삶에 대해 스스로 선택할 수 없으므로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 아직 남아있는 미성년자다.
“알겠어요. 제가 좋은 곳도 많이 알고 좋은 방법도 많이 알아요. 그러니까 우리 우선 장소를 옮기면 안 될까요?”
나는 티를 안 내고 싶었지만 세상 그 어느 때보다 당황해있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 예슬에게도 들리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녀는 오로지 나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제 목숨을 내놓고 내게 땡깡을 부리고 있다. 다만, 대체 왜?
“그러면 내가 돕게 해줘. 그리고 오빠가 내 이야기 한 번 들어주면 되잖아.”
“글쎄, 그건 안 된다니까요.”
“아 그럼 지금 날 죽이라고.”
이 대화는 30분 전부터 뱅뱅 돌고 있었다. 설령 예슬이 진심으로 죽고자 했다해도 나는 그녀를 도울 생각이 없었다. 다른 날에는 물론이거니와, 오늘처럼 심란한 날에는 더더욱. 무엇보다 그녀는 진심이 아니었다. 자기도 모르게 살려달라고 빌었던 아까의 그것이 진심이 아니었다지만, 적어도 오늘 여기서 이렇게 죽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애초에 이렇게 낮은 다리에서 뛰어서 죽기는 어렵다. 아주 아프겠지만 죽지는 않는다. 높은 확률로 사람의 본능이 자신을 보호하기 때문에 적당히 아플만큼의 찰과상에 그칠 것이다. 특히 예슬은, 아픈 것을 죽는 것보다 무서워한다. 그래서 도저히 죽일 수 없었다.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감지한 사람이 느끼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나도 잘 아니까.
그런데, 거기서 덜미가 잡혔다.
“대체 저한테 왜 그래요. 당신, 정말 최악이야.”
“와 웃기다. 사람 토막내서 버리다가 걸린 사람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그냥 멀리서 봤을 때 신고를 하시지 그랬어요,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얘기했잖아, 죽을 생각이라고. 그런데 막상 그렇게 달려드니까 너무 무서웠단 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이런 반응 아니었어?”
“단 한 명도. 저는 죽고싶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죽인 적이 없어요.”
아주 교묘한 거짓말이다. 반 정도는. 나는 지금껏 열 명을 죽였다. 그 중 여섯은 나에게 직접 부탁했다. 자신을 죽여달라고. 너의 사랑을 완성해보이라고. 기꺼이 가장 낮은 곳에 너를 위해 임하겠다 읊조렸던 경솔한 맹세를 지켜보라고. 이 부분은 틀림없이 진실이다.
나머지 넷은 어떤 지 모른다, 죽고싶지 않다고 할 틈을 주지 않아서, 혹은 그런 말을 아직 배우지 못했어서.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이 일단 일을 저지르고, 귀납적인 합리화가 일을 치른 후의 나를 다독여 습관적인 수습을 부추겼다. 그들의 삶들 또한 내가 정리해주었던 삶들과 다르지 않으리라 함부로 단정지으며. 또는 이렇게 괴물로 태어난 나를 하필 그날 그곳에서 마주친 그들이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뱃속에 침을 뱉는 듯이 곱씹으며.
그것이 아주 가증스러운 자기합리화라는 것을 나는 사실 알고 있었고, 가증스러움은 뒷처리를 하는 나를 내내 괴롭혔다. 자수를 할까, 자살을 할까, 그냥 될대로 되던지 말던지 전부 내팽겨치고 도망가볼까. 그러느라 나를 지켜보는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한때 인간이었던 유기물들을 조심스럽게 녹이고 긁어내 조금씩 흘려버리는 동안 예슬은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했다. 도랑에서 사람이 빚어지는 창조의 순간을 역순으로 재생한 듯한 비현실감에 압도당해 역겨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나.
대담하게도 열 발자국 앞까지 다가온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소스라치며 모기라도 때려잡듯이 덤벼들었고, 예슬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표정으로 비명을 삼켰다.
돌멩이를 치켜든 자세로 몸이 굳었다. 나자빠진 예슬의 소리없이 부릅뜬 두 눈에서 샘솟는 물줄기가 하도 거칠어서 개천이 흐르는 소리가 그곳에서 나오는 것인가 싶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내리쳐버린 머리통에서 피가 흐르는 것인가 싶어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때서야 오늘 내내 나를 괴롭히던 의문이 풀렸다. 나에게는 심장이 있었고, 나는 사람을 죽이며 즐거움을 얻지 않았다. 나는 강제로 붙들려있던 삶을 그 주인이 원하는 자리에 돌려놓은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사랑한 여섯 명의 여인들에 대해서는 그렇다.
네 명을 더 죽인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내가 그들이 겪었던 만큼의 고통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되는걸까. 혹은 그들이 세상에서 맡고 있던 사명이 있다면 그만큼을 내가 보상해낸다면 되는걸까. 자수를 하고 여생을 감옥에서 보낸다면 죄값을 치루는 것일까.
세상의 규칙에 뒷일을 맡기는 것은 또다른 방식의 도피이다. 법이란 개개인의 정의보다 절대다수의 편의를 위함에 가까운 것.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개인에게 그 잘난 ‘규칙’은 어떤 보상이나 하던가. 믿어주지 않겠지만 난 이미 예전에 끝나버린 내 삶에 대한 미련 따위 없다. 살기 위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스스로 납득할만한 결말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쨍알대기 시작한 예슬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이해를 벗어난 존재가 마침 가장 무너져있던 순간에 등장한 것은, 일종의 계시였다. 나는 신을 섬기지 않지만, 초월적인 믿음을 기초로 내 삶을 해석해왔다. 신을 등지고 외쳐댄 기도에 대한 응답이 이제야 여기에 와있었다.
어쨌든 당장 선택은 해야했다. 그녀를 여기서 죽여버리던지, 이렇게 아침까지 한심하게 말싸움이나 하다 다른 인간들에게 발견되어 끌려가던지, 무슨 지랄을 하던지 무시하고 내 할 일을 마치고 나머지는 신의 뜻에 맡기던지. 계시를 보낸 것에 뜻이 있다면, 그 뒤의 일도 뭐 알아서 이끌겠지. 그것이 실은 내 자신의 합리화를 위한 방임에서 올라온 목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애써 무시했다.
“오빠, 여기 손톱이 너무 많은데.”
태연하게 내 뒤를 졸졸 쫓아와 아직 정리가 덜 된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다 무슨 바퀴벌레라도 보듯이 조각난 사람을 대하는 이 열일곱살 여고생은, 세상의 기준에서 순수한 악일 것이 분명한 나를 구원하기 위해 보내준, 일종의 악마가 아닐까.

악마가 나에게 물었다.
“대체 몇 명을 죽인거야?”
나는 죄 없는 일곱 명의 젊은 여자들과 네 명의 인간을 잔혹하게 도륙한, 연쇄살인마 ‘X’의 계보를 잇는 악마, 김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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