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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당신의 이웃 vol 2. 변명 (범죄)

당신의 이웃 vol.2 - (6)

by 구운체리 2022. 1. 27.

6.
나는 전역 후 공 상병이 살던 동네에 집을 구해 그의 여자친구 병주를 만났다. 그때 이름을 처음 알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며 집안 살림을 거덜내고 병주를 때렸다. 병주는 그런 금수만도 못한 치도 아비라고 내치지 못하고 고분고분 따르고 있었다.
만약 사고가 아니었다면, 그건 자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에 떠있는 사람 배를 칼로 후벼놨다면, 그래서 그 사람이 발버둥을 포기하고 가라앉아 익사했다면. 찌른 사람이 죽인거야, 스스로 빠져 죽은거야? 칼이 아니라 주먹으로 머리를 후드려팼다면 어떤데. 아니면 기껏 발버둥치는 사람한테 ‘구조대는 오지 않고 당신의 체온은 점점 떨어져 결국 예정된 끝을 맡게 될 것이며 괜한 저항은 고통의 시간만 연장할 뿐’이라는 악담을 퍼부었다면.
나는 공 상병이 물 위에 둥둥 떠서 동네 아이들이 던지는 돌멩이에 하릴없이 맞아죽어가는 꿈을 꾸곤 했다. 그렇게 땀에 젖어 깨어나면 벌거벗은 몸으로 자신을 좀 죽여달라고 꿈 속에서 울부짖는 병주가 옆에 있었다. 어느 쪽이 더 끔찍한 것인지 모르겠다. 
우린 같은 꿈을 꾸고 있었을까?
그러던 어느 날 꿈에는 온 몸이 굳어버린 병주가 폐에 차오르는 물을 느끼며 뜬 눈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나왔다. 내 손에는 칼이 들려져있는데 그걸로 그녀의 목을 그어주면 보다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망망대해 위에서 내가 그녀를 건져낼 방도는 없었으니. ‘구조대는 오지 않아’ 속삭이는 목소리가 윙윙댔다.
병주가 제 아버지가 던진 소주병에 맞아 왼쪽 눈의 실핏줄이 터져 내가 찾아간 날, 그녀는 물었다.
“우리 현욱이, 정말 사고로 죽었어?”
어눌하고 어리숙한 평소 그녀의 몸에 귀신이라도 들린 듯한 또렷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곧 다시 눈에 힘이 풀리며 다음 문장부터 말을 더듬었다. 그 질문을 한달음에 내뱉기 위해 그 끔찍한 문장을 몇번이나 연습했던 것일까. 나는 차마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고, 그것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나, 보, 보내줘. 우리 현욱이, 거, 겨, 곁으로.”
나는 듣지 못한 체 하려 애썼지만 병주는 이내 구체적인 계획까지 가져왔다. 아픈 건 싫지만, 당해봐서 아는데 한번에 바짝 목이 졸리면 무서운 기분은 들어도 고통은 없더라고. 그러니 목을 졸라 죽여달라. 하지만 생의 마지막 기억이 그저 끔찍한 고통과 공포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생의 마지막 쾌락을 선물해달라. 공 상병의 죽음에 대한 거짓말을 했으니, 그 대가로 너의 사랑을 증명해라. 그렇게 자신에게 쾌락과 안식을 동시에 가져다달라. 유서를 써두었으니 책임은 아버지에게 갈 것이다. 동네 아주 유명한 개새끼라 일말의 의심조차 안 받을거라고. 협박과 간청이 섞인 그녀의 절규를 나는 더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나의 첫, 직접적인 살인이었다.
흔적이 남으면 곤란하므로 나는 체액을 현장에 남기지 않았다. 박제된 동물처럼 굳어버린 병주의 알몸을 보며 나는 분노에 차올랐다. 그 대상은 물론 그녀의 좆같은 애비였다. 그 금수만도 못한 놈을 아주 끔찍하게 담궈버리고 자수할 생각으로 숨어서 지켜보는데 웬걸. 
집에 온 그 자식이 지가 술에 취해 본인 딸을 강간살인했다고 생각했는지 허둥대며 토막내어 처리하려는 모습을 목격해버렸다. 아닌게 아니라 이미 몇차례 범행이력이 있는 새끼였구나, 그냥 유명한게 아니고 전국구로 유명한 천하의 ‘그’ 씹새끼였구나. 말년 즈음부터 뉴스를 안 봐서 몰랐는데 십몇년만에 나타난게 다름이 아니라 출소한 거였네. 그에게 딸이 있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따지고보면 공공에 알려져서 좋을 것 없는 정보이니까.
그는 주기적인 감시 대상이었으니 가만히 냅두어도 다시 잡혀들어갈 터였다. 내가 그놈을 내 손으로 찢어죽인들 무엇이 달라질까. 다만 나는 어떤 직감에 이끌려 그가 익숙하게 진행하는 해체작업과 약품처리 과정 등을 눈여겨 봐두었다. 개중 필요한 물건들 일부를 빼돌려 집으로 조용히 돌아왔다.
언론에서는 출소한 그가 제버릇 못 버리고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았으며, 신원불명의 희생자 1인의 존재와 최대 열명까지도 처리할 수 있는 약품이 사라졌다는 것을 발표했다. 공 상병의 존재를 지운 순간 병주도 세상에서 지워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연쇄살인마의 딸로 살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그 누구의 딸도 되지 않도록 방치하다 결국에 혼자 도망간 어미의 선택이 불러온 결과였다.

곧장 다음 대상을 찾아다닌 것은 아니다. 공허했다. 군 생활동안 육신의 굶주림을 정신적 만족으로 달랬듯, 지금 내 정신의 공허함을 육신으로 달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평소였으면 하지 않았을 랜덤채팅 어플을 깔고 닥치는대로 상대를 찾았다. 어렵게 서로의 욕구가 맞더라도 정신나간 내 꼴을 보고서도 관계를 계속하기 원하는 상대는 없었다.
‘릴리’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던 여자는 달랐다. 나보다 족히 스무살은 많아 보이던 그 여자는 미경 선배가 그랬듯 내 팔목의 상처를 보고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어질러진 내 방을 치워주었고, 나를 씻겨주었다. 따뜻한 밥을 차려먹였으며, 일주일 밤을 지내며 매일 아침 섹스를 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은 모르겠다. 본명도 나이도 모르지만, 일주일 째 되던 날 내가 훔쳐와 숨겨둔 커다란 드럼통과 비닐 류의 용도에 대해 물어본 것만은 기억이 난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예의 그 연쇄살인마 ‘X’가 사용하던 물건이라고. 그의 불행한 딸을 내 손으로 죽였으며 그의 손으로 처리하는 것올 보다 못 견디겠는 나머지 들고 튀었노라고.
내 솔직한 대답에 그녀도 솔직하게 응해왔다. 흉측한 외모의 자신을 징그럽게 여기지도, 장난으로 여기지도 않고 마음에서 우러난 오르가즘을 선물해 준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병 때문에 남은 삶이 길지도 않고 그 남은 삶마저 기대할 것은 없으니 정점에 오른 지금 매듭짓는 것도 괜찮겠노라고.
그제서야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물리적으로 어딘가 많이 잘못되어 있었지만, 그 짧은 사이 익숙해져서 그런가 흉측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그러진 피부가 주름이 아닐수도 있겠구나. 무슨무슨 병이라고 했는데 치료 과정에서 사기를 당해서 더욱 잘못되었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어차피 중요하지도 않았고 기억할 정신도 없던 즈음이다. 나에겐 발버둥을 자의로 멈춘 이의 굳은 결의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같은 방법, 다른 감정으로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르고 나니 망가졌던 정신이 다시 맑아졌다. 여섯 번째 살인을 저지를때쯤, 세상에 편리한 자살 버튼이 생긴다면 과연 얼마의 인구가 살아남을까 하는 의문과 내가 정말 그들의 우발적이지 않은 오랜 진심을 들여다 본 것은 맞을까 하는 의문이 동시에 들었다.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이들의 서사를 몇차례 읽어보며, 때론 그들을 과도하게 영웅화하려는 이야기적 조미료들이 불편한 적이 있었다. 나는 스스로가 사명을 타고난 구원자라던가 남다른 철학을 가진 초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합리화라도 더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만큼 정신이 흔들렸다.
내 생각에 나는 그저 뒤지게 재수가 나쁜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누군가는 사회적 제도를 통한 해결책을 제안하거나, 어쨌든 죄를 지었으니 속죄를 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을? 참회를 억지로 하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사회적 혼돈을 바로잡는 것이 목적인가, 정신의 진실된 정화를 위함인가.
그들이 죽게 됨으로 발생한 사회적 비용의 손실은 감히 없다고 단정할 수 있다. 내가 그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그들을 죽였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에 가져다 줄 혼돈의 비용은 있을테지만,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도록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 상병의 죽음이 사고로 정리되었듯.
진심어린 뉘우침? 타인의 진실과 진심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던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에게 자꾸만 진실을 요구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통한의 눈물이라도 흘려주기를 바라는걸까, 한점의 비껴칠 여지조차 없는 완벽한 악당이 되어주기를 바라는걸까. 원하는 바를 아는 것과 거기에 부응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지만.
나는 온전한 진심으로 나를 맡은 첫번째 변호사를 대하며, 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을 맞이했다. 그 인자한 할아버지가 소아성애자라고?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세상의 부당한 폭력이지만, 그 폭력의 근거를 제공했다는 책임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래 씨발 나 때문에 죽었어, 그 분은.
다음 차례는 내 정신분석을 담당한 주치의였다. 이번에는 온전히 내 나름의 광기로 만들어 낸 가상의 내 자신에 이입해 최대한 포장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와중에도 할 말 못 할 말을 채 가려내지 못해, 그들 모두를 아직도 사랑하노라는 진심을 은연 중에 고백해버렸다. 그들은 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박제될거라고. 
그는 일자리를 잃고 정치면의 지탄을 받고 있다던데, 내가 보기에 그는 의사나 작가보다 정치인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의 이름을 전국민이 기억하게 되었고, 멍청한 비난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 동력을 잃을테니 유명세만이 남아 도움이 될 것이다. 역시 진실보다는 적당히 포장된 전략적인 이야기들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듣고 있어 주하 선배? 어떻게 생각해? 당신이 일으킨 쓰나미를 보고 있는거야? 박 여사님, 당신이 내게 심어둔 평범함에 대한 강박이 도달한 종착역을 보고 있나요? 평범한 사람이란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돌아가려해요 김 부장님. 아 지금쯤 승진을 하셨으려나. 부장 다음에는 뭐라고 부르죠, 당신 회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