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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당신의 이웃 vol 2. 변명 (범죄)

당신의 이웃 vol.2 - (8) 完

by 구운체리 2022. 2. 1.

X.
사람들은 나의 허물을 그 어느 때보다 열렬히 소비한다. 나의 물리적인 죽음이 집행이 되고 나아가 생중계 되기를 원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며, 각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 내가 특정한 방향으로 행동해주기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진작에 죽어버렸기에, 내가 어떤 행동을 선택하던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매일 밤 나를 두들겨패면서 본인들의 파괴적인 욕구와 도덕적인 성취감을 동시에 맛보려는 동료 수감자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정말로 내 죽음이 법에 의해 집행이 된다면 가장 고상하고 편안한 모양이 될 것이다. 마취에 쓰이는 하얀 액체를 먼저 주입하는 과정은 내가 그동안 행해 온 방식과 일면 닮아있다. 물론 그 뒤로 숨통을 조이거나 목뼈를 부러뜨리는 과정은 없겠지만. 그렇지만 이 짐승들이 나를 그날까지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내 몸의 조각조각은 내 정신을 따라 조금씩 나에게서 떨어져나가고 있다. 다행히도 내 숨을 억지로 연명해두려는 잔인한 인도주의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내 마지막 숨을 쉬면서 내가 보내준 이들의 얼굴이 떠오를것이라 생각했다. 기억의 마지막까지 붙들어두기 위해 한 일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동안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기억들이 역류하고 있다. 아주 새까맣고 비좁은 와중에 한줄기 빛이 작은 구멍을 타고 아래에서부터 찌르듯이 올라온다. 나는 원하지 않으면서도 그 빛을 향해 기어간다. 통로는 점점 좁아지고 나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무언가, 나를 소중하게 보호하고 있는 무언가로부터 강제로 떨어져나가기 위해 몸을 잘라내고 있다. 그 너머에 차가운 얼굴과 손들이 나를 끄집어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 알 수 없는 감각의 기억은, 내 몸이 조금씩 분해될수록 선명하고 분명해진다. 나중에는 그 낯선 존재들이 의료용 천으로 온 몸을 가리고 있는 것과 지금의 동료 수감자들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그림들이 겹쳐진다.
죽어가는 기분과 태어나는 기분이 이렇게도 닮아있을 수 있다는 어리둥절함 속에서 나는 그저 눈을 감고 짐승처럼 음절없는 소리를 뱉어댈 뿐. 그렇게 마지막으로 ‘퍽’하는 소리를 듣고 머릿속에서 축포와 같은 섬광이 터지는 느낌을 받으며 ‘억’하는 마지막 음절을 세상에 내보냈다.

\*

사실 나는 그때 공 상병이 죽는 장면을 멀리서부터 지켜보았다. 공 상병도 그런 나를 지켜보았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그는 미소짓고 있었다. 내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면 막을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었다. 그렇게 막아낸 뒤의 일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그의 평안한 표정이 너무도 비현실적이라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지 모른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마주보고 가만히 서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일말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손을 뻗으며 그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게 오히려 그를 부추겼을까.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폭죽이 터졌다. 나는 그때 그 자리에서 기절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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