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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당신의 이웃 vol 2. 변명 (범죄)

당신의 이웃 vol.2 - (7)

by 구운체리 2022. 2. 1.

7.
예슬이는 꽤 유명한 기업 상무의 딸이었다. 본처는 아니고 공공연한 첩의 딸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정서적으로 궁핍했다. 자신의 처지를 조잘대며 설명했지만 나는 듣고있지 않았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차라리 거기서 자수를 하는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내 여섯 번째 사랑은 대학 동문 중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었는데 원치않는 애를 뱄다고 했다. 남자친구는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조부모가 남자친구를 너무도 끔찍하게 여긴 나머지 둘 사이의 관계를 시시콜콜하게 파고들어 간섭을 하며 그것을 사랑과 관심으로 포장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 일방적인 애정에 대한 대가까지 요구한다고 했다. 
‘아가 너한테 이 정도는 기대해도 되지 않겠니?’
도저히 임신이 될 만한 실수가 없었는데 어쩌면 조부모와 남자친구가 작당하고 음모를 벌인 결과가 아닐까하는 끔찍한 추측마저 들려주었다. 아이를 낳을수도 지울수도 없는 마당에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고 누가 고통없이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꺼냈다.
일부러 그런 사람들만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자꾸 잘못된 관심이 끌리는 게 거슬려 상처도 꾸준히 가리고 다니는데도 그런 사람들만 주변에 꼬였다. 생각을 놓고 살긴 했지만 릴리 이후로 정신줄을 되잡은 이후로는 쾌활하게 살려고 노력도 했는데.
그렇게 임산부와 뱃속의 태아가 내 손에 죽었고, 어쩌다보니 나머지 일가족도 한꺼번에 정리해야했다. 남자새끼는 병주의 애비가 생각나 홧김에 죽여버렸고, 그렇게 귀한 손주 내외와 증손주가 죽어버린 것을 안 노부부가 겪게 될 비극적인 여생을 생각하니 살려두는 것이 오히려 고문일 것 같았다. 살 만큼 사신 분들이기도 하고.
그쯤의 경혐이 쌓이니 손에 익어 일말의 고통조차 주지 않고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고나니 내 스스로가 너무나 괴물같이 느껴졌고, 남은 약품도 부족했다. 열 명까진 될거라더니, 하나는 아직 배아 상태였는데도 한참 모자라잖아.
그렇게 싱숭생숭한 와중에 예슬에게 후처리 과정을 들킨 것이다.

예슬이 내 방을 세 번째 찾아왔을때 나는 그녀가 내 마지막 사랑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소름이 끼쳤다. 나는 죽음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죽음은 무서운 것이다. 두려움과 옳지 않은 것이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만. 치과치료가 부당한 것은 아니니까.
예슬이의 계획적인 자살에 끌려다니며 나는 이 살인이 마지막이 되겠구나, 그리고 내가 그것을 원하는구나,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예슬은 젊었고, 맑았다. 그럼에도 살아내야 한다는 당위를 설득할 자신은 없지만, 어떻게든 살아낸다면 후에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건 그때의 내가 신경 쓸 일이야. 애초에 지금의 죽음을 왜 미뤄야 하는데?”
그 비슷한 질문에 돌아온 대답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고, 내 스스로 거기에 반박했던 것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그 질문과 대답들의 연장선에 서 있는 내가, 그녀가 최종적으로 이르게 될 질문을 파훼하거나 피해갈 방법은 없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어 자수를 했지만 곧 장난전화하지 말라는 대답을 들었다. 병주의 성씨가 무엇인지 그때는 떠올리지 못했고, 릴리의 본명을 몰랐기에, 나머지 이름들은 댈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병주 아버지가 유명하니 조금 생각해보면 성씨를 유추할 수 있었지만, 애초에 병주는 주민등록이 되어있지 않았다.
“오, 유명한 사람이네. 사람들은 그래도 그 사람은 당해도 싸다고 할 걸?”
예슬이는 자수에 실패한 내 이야기를 듣더니 병주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연쇄살인마가 제 딸을 통해 대가를 치른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할거라고.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나는 알고, 또 봤다. 제 딸이 죽임을 당했다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인간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예슬이도 나도 알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예슬이의 계획에 포섭당해 그녀가 시키는대로 이끌려다녔다. 협조는 하겠다만 중도에 어떻게든 어그러지면 그것의 너의 운명이니 받아들이고 살아남으라는 나의 말에 알아서 할테니 닥치고 따르기나 하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그녀가 위조한 신분증을 받아들고 서울대 경영학과 차석졸업생이 되어 그녀의 과외선생 자격으로 그 집에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예슬의 어머니는 딸에 대한 친권행사가 가능할 때 그 권리를 최대한 이용해 제 몫을 당겨오려는 속셈이 너무도 눈에 선했고, 한낱 과외선생인 내 눈에도 보일 정도면 산전수전 다 겪은 대기업 임원의 눈에는 말할 것도 없을테니, 좌절되는 시도들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실패의 책임은 모조리 예슬을 향해 쏟아졌다.
네년이 똑부러지지 못해서, 더 반듯하지 못해서, 이쁨받지 못해서, 제 어미 알기를 뭣으로 해서, 나이쳐먹고 몸이나 팔다 뒈져버릴년.
나는 예슬에게 아버지와 따로 연락해서 도망쳐사는 삶을 권했지만, 공공연한 비밀과 공연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했다. 어차피 입막음을 위해 자신의 어머니를 처리해야 할텐데, 그러는김에 자신까지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싸게 먹히는 길일 것이다. 인간적인 정을 주고받는 부녀관계는 애초에 아니었다.
그런 시시한 끝이나 맞느니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고.

그렇게 의지가 확고하던 예슬이도 마지막 순간에는 떨고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을 언제든 중도에 멈출 수 있다고, 나는 몇 번이고 자비를 부탁하듯이 물었다. 표면적으로는 내가 집행자였지만, 동시에 나에게 다가온 죽음의 두려움 앞에 저항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예슬이 또한 같은 두려움 앞에 떨면서도 멈추지 말라고 지시했다. 나를 데리러 온 죽음의 사신과도 같은 존재의 명령에 나는 압도당했다.
이전까지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 일을 행하기 전에 항상 하던 일을 예슬이와도 했다. 미성년자와의 육체관계에 대해 사회적 통념이 주입한 거부감 같은 것은 없었지만, 예슬이는 내가 애초에 사랑했던 연인들과는 달랐기에 망설임이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원했다. 죽기 전에 한 번은 경험해보고 싶다고했다. 끝까지 멈추지 말 것. 동시에 절정에 다다른 순간에 끝을 선물할 것.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까다로운 요구들을 들어주는데 성공했다.
너무도 집중한 나머지 절정의 순간에 나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내가 두 손으로 막고 있으니 예슬이 또한 그러했다. 그 마지막 순간은 그렇게 열기만이 가득한 채 고요했다. 그날의 나머지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순간 죽어버린건 내 자신이기도 했다. 
나는 발버둥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