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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당신의 이웃 vol 2. 변명 (범죄)

당신의 이웃 vol.2 - (2)

by 구운체리 2022. 1. 13.

2.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할 일이 많았던 것이 나에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혹은 인도함이었는지 모르겠다. 내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박 여사는 죽고 싶다, 죽이고 싶다, 가까운 누군가 죽는 꼴을 보고싶다 등등 죽음에 대한 언급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자체가 나에게 죽음에 대한 인상을 준 것은 아니다. 입버릇에 불과했을 뿐, 그녀는 누구보다 생명력이 끈질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철천지 원수라도 물에 빠졌다면 구하고봤을 성정이었다.
하지만 그 영향으로 또래보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조금 친숙하고 무해하게 느낀 것 또한 사실이다. 국민학교 3학년 때인가, 전교생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 표어 및 포스터 대회가 열렸었다. 나는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도통 가늠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것을 왜 나쁘다고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박 여사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선생님께 질문하라 했다. 똑부러진 사람이 되어 아버지와는 다르게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이웃들을 업신여기며 살아야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때의 선생님은 가벼운 체벌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웃음거리가 되어 두 손을 들고 반 뒤에 서 있어야 했고 어떤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포스터에 그려넣기도 했다. 
학교에 불려온 박 여사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내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내가 너 땜에 죽겠다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 못 배운 것아. 동네 창피하게 그냥 죽어버리지 그랬냐.”
내가 대체 왜 혼났으며 엄마고 선생님이고 내게 무슨 가르침을 주고 싶었던 것인지 깨닫는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 이후로 나는 말이 없는 학생이 되었다. 박 여사의 새로운 가르침에 따라 질문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책을 찾아보는 습관을 들이니 어느 새 학교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아이가 되었다. 반 친구들은 내가 숫기없고 생각도 없고 어쩌면 반에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다독상과 개근상을 받아온 초등학교 졸업식 날 박 여사는 소박한 잔치를 열었다. 상복이 없는 유년기를 보낸 부모님이 보시기에 상을 두 개나 받은 나는 판검사가 될 새싹이었다. 그래봐야 외가쪽 친척들과 내 이름이나 겨우 기억하는 같은 단지 내 친구들 몇 명을 불러 함께 배달음식을 먹은 것이 전부였지만, 제법 즐거운 기억이었다.
그 기억 속에 내 아버지, 김 부장님은 없었다. 김 부장님은 출장이 많고 야근이 잦았다. 우리는 2-3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해왔다. 어려서는 그저 회사원인줄로만 알았고, 나이가 들어서도 분야가 건축 쪽이라는 것만 알지 정확히 무슨 일을 하시는지는 몰랐다. 가끔 여쭈어봐도, 술과 피로에 찌든 채 ‘그러게나 말이다, 한아. 우리 한이.’ 하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뭘 물어보면 알려주는 어른은 없고 감정으로 되돌려받는 일만 많은, 알쏭달쏭한 시절이었다. 그래도 아버지의 숨소리에 담긴 감정은 사랑이었다. 내 이름을 부를 때 ‘하니’라는 달콤한 애칭이 되도록 ‘한’이라는 외자를 직접 지어주었다고 하셨는데, 그 속뜻을 아는 사람은 끝내 아버지 한 분 뿐이셨던 것 같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 뜻을 몰랐으니, 아니 인정하지 않았으니. 사람 이름이 김꿀이 뭐야.

우리 가족은 화목한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실상 감정적으로 메말라 서로 간의 사소한 쓸림도 상처가 되곤 했다. 부모님은 서로를 김 부장과 박 여사라고 불렀는데, 심지어 그 ‘부장’이라는 직함에도 ‘만년부장’이라는 비아냥이 담겨있었다. 나 또한 엄마, 아빠보다 양쪽 할아버지의 성씨로 시작하는 호칭들이 익숙했다.
김 부장과 박 여사는 대화 아닌 대화를 통한 싸움 아닌 싸움이 잦았다. 김 부장님은 주 4일 철야근무를 뛰고 돌아오면 나머지 3일은 죽은 듯이 잠만 자다 일어나 밥만 먹고 다시 잠들었다. 때로 아주 짧은 짬을 내어 살림을 거들고자 할 때도 있었지만, 가내 삶의 현장은 김 부장의 적성에는 영 맞기 어려웠다. 정적이고 섬세한 동작들을 요구하는 일들을 어설프게 거들다보면 잔실수가 많았다. 박 여사는 어린 나에게 게으름과 무능이 옮으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뒹굴대라고 질책했다.
“이렇게라도 해야 우리 하니가 내 얼굴 안 까먹지.”
“핑계대지 말고 일어나서 공부라도 봐주던가 그럼.”
“우리 하니, 구구단은 외우니?”
“저 내년이면 중학교 가는데요.”
“요새 구구단은 고등학교에서 배우나?”
“김 부장님, 우리 한이 봐서라도 조금만 더 열심히 일해요.”
“우리 박 여사 덕분에 우리 아버지 가시는 길도 못 보고 일만 했는데, 더 열심히 해야지 그럼.”
“일에 집중하신 덕에 그때 잔금 치뤘다고 했죠. 요새 어느 며느리가 시아버지 제삿상을 챙긴답니까. 제 딸들도 안 챙기는 걸. 이렇게까지 내조하는 며느리 또 없지. 아이고 우리 불쌍한 어머니는 누가 젯밥 챙겨주나.”
“박 여사 항상 맞는 말만 하는거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 암. 내가 문제야 항상, 내가.”
두 분은 완벽한 가정에 대한 강박이 뿌리깊게 세뇌된 사람들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우러러 볼 수 있으면 좋지만, 최소한 평범하게라도 보여야한다고 믿었다. 조금이라도 어긋남이 보이면 공격적으로 교정하려 들었다.
내가 ‘자살이 왜 나쁘냐’고 물었을 때, 그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담임이 박 여사를 학교로 불렀을 때, 박 여사에게는 자식이 일으킨 문제로 호출당한 학부모가 되었다는 사실부터가 비정상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내 멱살을 잡고 흔들어댄 것이었다.
세상에 정답은 없지만 피해야 할 오답은 많았다. 어울리면 안 되는 사람들, 접하면 안 될 매체들, 떠올리면 안 될 생각들. 서울에서 나고 난 사람이 서울을 벗어나 터전을 잡는 것도 박 여사의 세상 속 수많은 오답 중 하나였다. 그것은 곧 패배요, 도태이며, 나태함의 결실이었다. 
구로에서 담당하던 작업이 끝난 아버지의 다음 행선지는 마산으로 정해졌다. 회사나 가정 중 하나를 버리는 것은 아버지의 세상 속에 존재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그렇다고 매일을 남한 국토를 가로질러 출퇴근을 할 수는 없었기에 아버지는 작업장에 놓인 작은 컨테이너에 당신을 위한 간이 당직실을 마련해 생활을 하기로했다. 얼마 되지 않는 고시원 월세를 내는 것 조차 낭비라고 닥달하는 박 여사의 고집이 한 몫을 했지만, 실은 아버지 본인도 그렇게 조금씩 삶의 터전을 양보하다 언젠가 완전히 나고 자란 서울에서 쫓겨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패배하지 않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쳐 발버둥쳤다. 아버지가 이동식 냉난방 시설만이 구색으로 갖춰진 공간에서 눅눅한 잠을 청하는동안 어머니는 홀로 내 뒷바라지를 떠맡았다. 오로지 나의 훌륭한 교육 성취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실은 그 누구도 위한 일이 아니었다.
혼자가 되고나니 내내 잠만 자는 줄로 알았던 아버지가 거들던 살림의 영역이 제법 컸다는 것을 박 여사는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가령 고장난 가구의 나사들을 풀어해쳤다 조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파이프를 손보는 일들. 계절에 따라 침대를 들어 옮기고 이웃들과의 분쟁을 조정하는 일들.
박 여사는 적으로 돌리면 절대 안 되는 인물 군에 속했지만, 겉보기에는 쇠약하고 신경질적인 여인이었다. 그런 사람을 얕보면 안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몰랐다. 그런만큼 박 여사는 늘상 화에 잠겨있었고 그 잔불을 감당하는 건 나의 몫이었다. 이유없는 신경질을 쏟아내고 난 뒤에는 나에게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해서 이런 일이 없게끔 해달라는 부드러운 부탁이 이어졌다. 그 안에 담긴 감정 또한 사랑의 한가지 형태라고 느꼈다.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사랑받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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