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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주사위 놀음 (범죄, 일상)

주사위 놀음 - (C-1)

by 구운체리 2022. 5. 13.

C-1.
세상에는 진리가 있다.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지만 함부로 입 밖에 꺼내지 않는 단 하나의 원리로 세상은 돌아간다. 공공연한 그것을 입 밖에 꺼내어 인정하는 순간 몹시 귀찮아지기 때문에 다들 감추고 있을 뿐.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 알약을 선택하는 것과 같이. 나는 의도치 않게 그 비밀을 어린 나이에 깨달아버렸고,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즉시 떠나버린 내 무지로부터 기인한 안락의 땅이 그리워졌지만, 행동해야 했다. 그 진실은 아마도 당신도 알고 있을 그것이다. 바로, 힘이 센 만큼 더 많은 것을 거머쥘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 물리적인 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살고있는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기초적인 원소로써의 힘. 바로 돈이다.
사회는 단계를 거쳐가며 일종의 진화를 거듭하고, 그에 따라 기초 원소는 달라지지만, 그 힘을 많이 거머쥔 자가 그만큼의 지배력을 누린다는 진리만큼은 변하지 않아왔다. 처음에는 힘이었다가, 다음에는 핏줄 혹은 명분이었다가, 이제는 돈의 세상이 왔다. 돈으로 힘을 살 수 있고, 돈으로 가문을 살 수 있고, 돈으로 명분을 만들 수 있다. 오직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자본, 수단과 방법을 가려야 한다는 것은 세상이 정글 난이도가 되지 않기 위해 겁쟁이들이 쳐둔 안전 울타리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아가기로 했다. 
늑대는 양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법이다. 양떼는 결코 늑대를 심판할 수 없다. 더 많은 돈을 손에 쥐고, 나는 늑대, 호랑이, 용, 그 위에 무엇이 되었든 힘 닿는 곳까지 나아가보기로 했다. 그게 내가 태어난 이유이다. 십대 후반 즈음에 내가 터득한 나의 소명이다.
어렸을 적 돈을 모으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작은 허드렛일이라도 나의 노동을 자본으로 환산할 수 있는 거리가 보이면 악착같이 매달렸고, 그런 나의 영특함을 어른들은 기특해하며 적선하듯이 보다 많은 가치로 되돌려주고는 했다. 한편으로 그런 나를 시다처럼 부리려고 하는 어른들도 있었는데, 몇 번 착취를 당한 뒤 그런 일감에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노동과 교환되는 자본의 가치가 반드시 비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나니, 어떻게 해야 보다 더 효율적으로 돈을 긁어모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빌 게이츠는 너무도 막연한 존재였고,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를 잘 만났고, 이병철 회장은 시대를 너무도 잘 타고났어. 물론 그들이 오로지 운으로만 그 부를 쌓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따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나처럼 바닥에서 시작해 왕의 자리에 오른 이 누구인가. 그렇게 나는 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어떤 물건들은 단 몇 블록 들고 나르는 것만으로 몇 배의 가치가 뛰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다닌 학교에는 소위 말하는 양아치 무리가 있었다. 치열한 싸움박질을 통해 서열을 정리하고 무리 바깥의 만만한 아이들에게 돈을 걷어 서열 순서대로 돈을 나누어갖는 구조였다. 나도 힘이라면 어디 뒤지지 않았지만 내 관점에서 그들은 너무도 비효율적이고 보잘것없는 만족감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훨씬 어린 시절의 나라면 그들을 두려워하면서도 동경하고 때로는 한심하게도 여겼겠지만, 그때의 나에게 그들은 탐스러운 탐욕스러움을 가진 존재였다. 그런 출중한 물리력을 갖고도 본인들의 인생을 헛된 물욕에 헐값에 팔아넘길 수 있는 친구들이니, 내가 그들을 다스린다면 어떨까.
나는 그놈들 무리 중 2인자 격인 녀석을 미행하다 밤중에 빈틈을 노려 후두부를 후드려 깐 뒤 때려눕혔다. 그리고 그것을 라이벌 무리 우두머리의 짓으로 몰고갔다. 내가 운반하는 물건의 동선에 맞게 움직이는 큰 형님들이 계시고, 그들의 영향권 이내에서 어린 새끼 사냥개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약간의 거짓말만으로 전후상황을 만들어내기에는 충분했다. 
두 집단의 우두머리는 서로 치고받다가 경찰에게 잡혀갔고, 내가 던져놓은 물건들과 전후 상황들로 인해 그들은 나의 것까지 책임을 지고 소년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졸지에 두목을 잃은 두 집단이 어수선한 사이 나는 그들 모두를 매수하여 내 영향력 아래에 두었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 앙숙관계로 대립하며 헛짓거리를 일삼고 있지만 꾸준히 새로운 사냥개들을 길러내고 쓰임이 다한 녀석들은 퇴출하며 물갈이가 되었으며, 필요한 곳에서 짖으라면 물고 물라면 찢어발기는 충견들이 되었다. 그들은 제 진짜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가장 충성스러운 개떼였다.
성인이 되고나니 보다 맑게 눈이 트였다. 세상의 진리를 처음 깨달았을때 만큼이나 갑자기 머리가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지만 점잖은 가면을 쓰기 위해 입 밖에 내지 않는 그것. 내가 세상의 법을 존중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떳떳하게 내 신분을 걸고 신뢰를 쌓아 이름에 값을 매기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성인의 문화로 향유되고 있는 향락의 세상. 섹스와 도박에는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돈이 오고갔다. 그리고 그곳에 두고 온 돈을 주인이 되찾으러 오는 법은 잘 없었다. 눈먼 돈을 쓸어담을 수 있는 여러 기획들을 구상했고, 그 중 일부를 실현시켰다. 비슷한 꿈을 꾸었던 이들과 달리 나는 내 스스로를 되도록 드러내지 않았고, 과욕을 부리지 않았으며, 남들보다 한번 더 생각하고 버릴 것은 빠르게 버렸다. 나는 역시 타고난 놈이었다. 나는 버젓한 회사를 차려 나의 개들 중 괜찮은 녀석들을 떳떳하게 고용했다. 물론 그들은 나를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통장에 찍히는 금액의 자릿수가 달라졌다. 사업이 진행되는만큼 돈도 계속 굴러야했다. 이제는 부동산과 땅을 다룰 차례였다. 대서사의 시작은 낭만 오피스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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