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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주사위 놀음 (범죄, 일상)

주사위 놀음 - (C-2)

by 구운체리 2022. 5. 20.

C-2.
세상의 법 위에 서기 위해 법이 필요하지 않듯, 어떤 일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 그 일을 반드시 잘 하거나 심지어 잘 알 필요조차 없다. 내가 IT회사의 대표이듯 말이다. 나의 회사는 물건을 판매하고 회수하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구매욕구를 돋군다. 실적이 높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사용후기로 제작된 영상들을 보여주면 그들은 더욱 충성스러운 고객이 된다.
영상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나와 나의 사냥개들이 낚아올린 물고기들이다. 내 작품에 출연하는 대가로 나에게 도리어 돈을 가져다바치며, 그것을 잠시 가려주는 대가로 꾸준히 소량의 돈을 지불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을 비틀어 짜서 망가뜨리지 않는다. 브루잉을 하듯이 공을 들여 천천히 오래가는 동행의 관계를 맺을 뿐이다. 가끔 뜻밖의 선물도 주면서, 나만의 어항을 쾌적하게 가꾼다.
지하에서는 도박 사이트와 성매매 알선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오피스텔 하나를 통째로 소유하고 있으니 공간에 대한 비용이 절약되고, 배우들 중 재능있는 친구들을 살게 해두었으니 섭외의 비용도 절약되었다. 비상시를 대비해 안전 문제를 책임질 나의 사냥개들도 알게 모르게 풀어두었다. 내가 직접 보고 적합성을 검증한 아이들이지만 그 녀석들은 나를 만났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내가 한국말을 잘하는 광동의 중국인 바이어인 줄로 알고있을 것이다. 
가까운 건물에 헬스장을 운영하며 사냥개들의 건강 상태를 꾸준히 모니터링 하고있다. 헬스장에서 보여주는 양질의 관심과 친절을 잊지 못해 떠나지 못하고 보다 충성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모를 것이다. SNS등에 홍보를 금지해두어 불청객이 가입할 여지를 두지 않고, 또 회원 간의 친목 도모를 지양하는 방향의 운영방침을 고수하기에 서로의 정체를 잘 모르고 있으니 나에겐 제법 유용한 무력이다. 내가 하는 일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데에는 상상 이상의 무력이 필요했다. 
돈을 많이 잃고 생떼를 쓰거나 약이나 쾌락에 취해 이상한 사고를 치려고 드는 못난 녀석들은 본인들이 삶에서 더 이상 잃을 것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더 잃을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자세히 가르쳐주는데에 힘이 필요하다. 이빨이 몇개이고, 갈비뼈가 몇개이고, 손톱 발톱이 몇개인지 잊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오피스텔의 잠겨있는 지하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살고자 하면 나는 얼마든지 손을 내민다. 먹이를 주고, 할 일을 정해준다. 절대로 그들이 무너져 망가지게 두지 않는다. 그러면 세간으로부터 필요 이상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임시로 나의 회사에 취직을 시켜주기도 한다. 나이가 제법 찼음에도 부모의 품을 미처 못 벗어난 어른아이들이 있는데, 그들의 늙은 부모를 안심시켜주기 위함이다. 때론 그 철없는 어른들의 거짓말에 동조해주기도 하면서. 
물론 그런 녀석들은 귀하게 쓸 수 없는 자원이다. 그래서 높은 보수를 미끼로 위험한 임무를 맡기곤 하는데, 보통은 살아돌아오지 못한다. 그들이 생전이 진 빚은 그 늙은 부모들의 것이 될 테지. 의외로 결혼을 했거나 심지어 아이가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책임져야 할 식솔들을 두고 어찌 그렇게 한심한 선택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동정하지도 않았다. 
늑대가 양 잡아먹는게 죄인가. 나는 그들을 잡아먹고 그만큼 덩치가 불어나는 것이다. 도태되는 종을 잡아먹으며 무리의 위에 군림하는 포식자의 생활양식을 몸에 익혔으니, 남은 것은 부동산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과 정계와 법조계에 닿는 영향력을 확고하게 하는 것. 그러면서도 정체를 드러내지는 않는 것.
나는 언제나 내 고객님들과 물고기, 사냥개들의 인적사항을 세심하게 살핀다. 도박에 빠지는 데에는 귀천이 없다. 내 계급이 한 단계 진화하는 일이 머지않은 것 같다고 느껴진다. 나는 전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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