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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3) 3. 정욱은 수업 중에 창수의 권위에 도전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고, 장군은 창수의 차에 가한 테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대략 3층 높이에서 창밖으로 벽돌뭉치를 집어던진 일이 창수의 차를 직접 겨냥한 것이라면 그것대로 문제였고 그렇지 않은 사고라면 훨씬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정욱이 창수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창수는 그 날 이후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겠노라 선언하는 대신에 그 날 일어난 일체의 일들을 잊기로 약속했다. 어쩌면 그 테러가 자신을 정조준한 것이며 본인이 그런 일을 당할만큼의 잘못을 했다고 인정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창수는 실제로 보다 나은 선생이 되었다. 가장 먼저 보인 행동은 수업시간에 규민을 따로 불러세운 다음 고개숙여 사과.. 2022. 2. 2.
당신의 이웃 vol.2 - (8) 完 X. 사람들은 나의 허물을 그 어느 때보다 열렬히 소비한다. 나의 물리적인 죽음이 집행이 되고 나아가 생중계 되기를 원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며, 각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 내가 특정한 방향으로 행동해주기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진작에 죽어버렸기에, 내가 어떤 행동을 선택하던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매일 밤 나를 두들겨패면서 본인들의 파괴적인 욕구와 도덕적인 성취감을 동시에 맛보려는 동료 수감자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정말로 내 죽음이 법에 의해 집행이 된다면 가장 고상하고 편안한 모양이 될 것이다. 마취에 쓰이는 하얀 액체를 먼저 주입하는 과정은 내가 그동안 행해 온 방식과 일면 닮아있다. 물론 그 뒤로 숨통을 조이거나 목뼈를 부러뜨리는 과정은 없겠지만. 그렇지만 .. 2022. 2. 1.
당신의 이웃 vol.2 - (7) 7. 예슬이는 꽤 유명한 기업 상무의 딸이었다. 본처는 아니고 공공연한 첩의 딸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정서적으로 궁핍했다. 자신의 처지를 조잘대며 설명했지만 나는 듣고있지 않았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차라리 거기서 자수를 하는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내 여섯 번째 사랑은 대학 동문 중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었는데 원치않는 애를 뱄다고 했다. 남자친구는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조부모가 남자친구를 너무도 끔찍하게 여긴 나머지 둘 사이의 관계를 시시콜콜하게 파고들어 간섭을 하며 그것을 사랑과 관심으로 포장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 일방적인 애정에 대한 대가까지 요구한다고 했다. ‘아가 너한테 이 정도는 기대해도 되지 않겠니?’ 도저히 임신이 될 만한 실수.. 2022. 2. 1.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N) N. “대동흥 21기, 부동의 부흥을 위하여! 여기 부부끼리 오신 동창들이 많으시네요. 자, 제가 부부를 위하는 동안 여러분은 동흥을 위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에이 자, 잘 들어봐요. 제가 부를, 두 번, 크게 외칠테니까 여러분은 뭐라구요? 동, 흥! 자랑스러운 우리 모교의 이름을 외쳐주시고 함께 위하여, 외쳐주시면 되겠습니다. 자 큰소리로, 부, 부, 위하여!” 다소 연배가 느껴지는 주헌의 힘찬 권주사가 이어진 후로 오랜만에 모인 동흥고 21기 동창들은 시끌벅적하게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대관한 술집은 가득차 간이의자를 가져와 좁게 모여앉아야했고, 실내는 금새 소리와 열로 가득찼다. “저기, 우리 고 의원님은 언제 오십니까?” 잠시 소란이 잦아들고 소강상.. 2022. 1. 31.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2) 2. 규민이 전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규민 혼자만 몰랐다. 용주도 그것을 알면서도 어울리고 있는 것이었고, 심지어는 창수도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모른채 할 뿐이었다. 정욱이 반장으로써 적당한 선에서 잘 통제하고 있으니. 왕따로 인해 사회성을 기를 기회가 없는 것이 먼저인지 타고난 사회성이 결여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른인 창수조차도 가끔 규민에게 분통이 터지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규민이 아니라도 아이들은 다른 대상을 필요로 할 것이고, 기왕 희생양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규민이 되는 편이 편하다고 창수는 멋대로 생각했다. 아니, 정욱의 생각에 동조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선생으로써 자격미달인 행동이지만, 정욱의 입지와 그 부모님이 학교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제법 .. 2022. 1. 28.
당신의 이웃 vol.2 - (6) 6. 나는 전역 후 공 상병이 살던 동네에 집을 구해 그의 여자친구 병주를 만났다. 그때 이름을 처음 알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며 집안 살림을 거덜내고 병주를 때렸다. 병주는 그런 금수만도 못한 치도 아비라고 내치지 못하고 고분고분 따르고 있었다. 만약 사고가 아니었다면, 그건 자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에 떠있는 사람 배를 칼로 후벼놨다면, 그래서 그 사람이 발버둥을 포기하고 가라앉아 익사했다면. 찌른 사람이 죽인거야, 스스로 빠져 죽은거야? 칼이 아니라 주먹으로 머리를 후드려팼다면 어떤데. 아니면 기껏 발버둥치는 사람한테 ‘구조대는 오지 않고 당신의 체온은 점점 떨어져 결국 예정된 끝을 맡게 될 것이며 괜한 저항은 고통의 시간만 연장할 뿐’이라는 악담을 퍼부었다면. 나는 공 .. 2022.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