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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리뷰15

(리뷰) 본즈 앤 올 답도 없는 괴물로 태어난 우울함에 비명처럼 뱉어낸 울부짖음 어느 날 동네 핫하고 조구만 호프집에서 우연히 동네 친구를 만났다. 동네 친구라고는 하지만 이 동네 산지 일년 가까이 되는 동안 세번 마주쳤고 그 중에 그날을 포함한 두번은 우연이었다. 우연이 아니었던 지난 만남에서 우린 ‘에에올’ 쩔었다는 얘기를 했었고, 이 날은 친구가 마침 ‘본즈 앤 올’을 막 보고나온 여운에 잠겨있는 상태였다. 제목으로 보나 카피 문구로 보나 내가 선뜻 보기 어려운 영화였지만, ‘에에올’과 비슷한 결을 공유한다는 말에, 속더라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다만 상영관이 많지 않고 주말에 술약속들을 몰아놓은 회사원의 출퇴근 시간과 맞지 않아 기약없는 OTT를 기다려야 하나 싶었었다. 어느 재수없던 날 연차를 쓰고 먼길 헛.. 2023. 4. 12.
(리뷰)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모던클래식 2악장: Leggiero (가볍고 경쾌하게) 1악장의 이야기적 완성도가 너무 감탄스러웠어서, 그걸 두번이나 해낼 수가 있나 기대를 품고 있었다. (아바타의 경우와는 다르다. 아바타는 이야기 자체에 기대를 걸었던게 아니라서.) 결과적으로 1편만큼의 감탄은 아니지만, 추리물 좀 치네 인정할만큼은 되었다. 1편도 리듬이 경쾌한 편이었지만, 2편에는 여유로움과 의도한 유머의 비중이 늘어서 조금 더 통통 튀었다. 1편에서는 전말이야 어떻든 사람이 뜻밖에 죽어나가고 시작한지라 마냥 웃고 떠들기 어려웠지만 2편에서는 역시 전말이야 어떻든 가짜 살인사건을 풀고 예방하면서 흘러갔기 때문에 보다 가벼울 수 있었다. 와중에 현대적인 소재들(어몽어스, 코로나, 인플루언서)을 재료로 잘 가져다썼다. 에드거나 아가사가.. 2023. 4. 10.
(리뷰) 캐롤 기꺼이 나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도록 토드 헤인즈 감독이 사진작가 사울레이터의 작품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퀴어-로맨스영화이다. 다양성이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하던 시대의 레즈비언들을 주인공으로 삼고있다. 감독은 소수자의 시선을 빌어 당연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사랑의 성질을 조명한다. 무너지지도 무너뜨리지도 않고 위태롭지만 꼿꼿하게 균형을 잡는 캐롤의 기개를 빌어 자아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지지한다. 세상의 모든 악하지 않은 어른들을 응원한다. 자뭇 따뜻하다. 사울레이터의 시선은 은근하면서 응큼한 구석이 있다. 구석에 웅크려 몰래 쳐다볼것만 같지만 숨어있는 모습이 꿩이 숨바꼭질하듯하여 피사체가 위협을 느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노골적으로 사적인 영역에 대한 침범을 시도하는 셈이며, 상대가 받아들일 .. 2023. 4. 7.
(리뷰) 혼자사는 사람들 인간은 장소에서의 환대를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된다 엄마가 어제 죽었다. 아니 한달 전이었나. 그러나 어쨌든 진아는 계속 일을 하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살았다.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주어진 자신의 일을 잘한다고 해도 세상은 자꾸만 그녀의 세상을 두드린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영속가능하지 않다. 옆집 남자는 필요 이상으로 말을 걸고, 회사는 신입 교육을 맡기는데 이 신입은 또 지나치게 E형에다 F형인 인간이고, 아빠라는 작자는... 죽은 사람이 말은 왜 걸고, 얘는 대체 어떻게 콜센터에 합격을 했으며, 아빠라는 작자는 대체. 혼자만의 조용한 식사를 지향하고 서로 간의 대화를 자제하게끔 하는 미분당은 딱 좋은 식당인데 넌 왜 따라오는데. 혼자사는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고 세상이 .. 2023. 4. 5.
(리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내가 있는 이곳의 모든 것, 내가 있는 모든 곳의 힘을 한꺼번에 전부 쏟아 대혼돈 속에 너를 위해 나를 던져볼까 해 ‘통계적 개연성’이 극도로 낮은 시퀀스들의 연속인 초반부 폭풍은 미친 사람의 뇌를 까뒤집어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환각성 마약에 취해 본 것들을 어디 적어뒀다가 그대로 연출한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빌런의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잡소리에 구심점이 생기더니 감정을 짓누르는 무게가 묵직해졌고 그러면서도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클라이맥스에서 돌과 같이 정적. 비트드랍 미쳤다. 영화에 대체 무슨 미친 짓거리를 해논거야? 에블린은 사는게 힘들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딸로 태어난 그녀에게 올바른 애정표현을 하지 못했고, 가난한 사랑을 쫓아 떠난 그녀를 쉽게도 내쳤다. 도망치듯 도착한 곳에 낙원.. 2023. 4. 3.
(리뷰) 애프터 양 삶의 요체란 무엇인가. 안드로이드의 존재론을 다룬 작품들 중 가장 섬세하고 사려깊다. 나의 언어를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언어를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포용이다. 포용은 우리가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라는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시혜성이 아니라, 비로소 우리 개개인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고찰하게 하는데 그 효용이 있다. 잘 우려낸 차 한잔을 음미하면서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이란 단순히 그 맛에 국한되지 않는다. 차라는 것은 제법 복잡하다. 모태가 된 식물이 있고, 그 식물이 뿌리를 두었던 땅이 있다. 그런가하면 식물 종 본연의 특성은 별개이다. 나무가 자라고 잎을 고르고 말려서 가공하는 모든 과정의 분기점으로부터 수십만가지 서로 다른 차 한잔의 결과가 나온다. 차를 음미한다는 것은 따뜻.. 2023.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