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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139

당신의 이웃 (6) 여기까지 김한의 프로파일은 살인범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가정환경이 확연하게 불우하지도 않았고 성 기능에 문제가 있거나 이상욕구를 숨기고 있지도 않았으며, 수가 조금 적지만 충분히 평범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군대에서의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었는가를 의심해볼만하지 않겠는가. 그와 함께 생활한 사람들의 평가가 일관되게 양호하면서도 모호하다는 점도 분명 부자연스럽다. 마지막까지 이 부분은 잃어버린 고리로 남겨둔 채 김한의 대답을 기대했지만, 그저 시큰둥하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미심쩍은 사건사고 기록도 존재하지 않으니 더 이상의 추측은 소설이다. 물론 이 글은 소설이지만, 필자는 상상력이 결핍된 인간이다. 모르겠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의심의 근거를.. 2021. 10. 31.
당신의 이웃 (5) 김한은 총 열여섯 명의 여성과 연인관계를 맺었고 그 중 열세 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다. 진지하게 마음을 나눈 여성은 그 중 일곱이었으며, 모두 김한에게 살해당했다. 이외에 김한은 네 명을 더 직접 죽였고, 그의 양친과 변호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까지 포함해 총 열네 명에게 생명의 빚을 졌다. 열한건의 직접 살인 중 일곱 명 모두는 김한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사랑하기에’ 죽였고 나머지 넷은 그 살인을 ‘완성하기’ 위해 죽였다. 후자의 살인에 대해 김한은 깊은 반성과 후회의 빛을 보였다. 시간을 되돌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 넷 만큼은 죽지 않게 하고 싶다고 했다. 달리 말해,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인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는 것이다. 대학 이후로 김한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저마다 조금씩.. 2021. 10. 30.
당신의 이웃 (4) “김한의 당시 연애나 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김한이 다닌 중학교는 남자반 여자반이 구분되어 있었다. 한창 새로운 호르몬이 뿜어나던 김한과 친구들은 성적인 모든 것에 대해 끓는 욕망과 갈증이 있었지만 매력과 열정이 받쳐주지 못했다. 가만히 앉아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만큼 매력적이지는 못했고, 스스로 무언가를 이끌어내려는 행동력도 부족했다. 그들의 성적 농담은 공허한 투기에 그쳤다. 권씨와 김한은 비교적 일찍 올바른 성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의 친구 황군은 아기가 여자 배꼽에서 나오는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졸업할 즈음에서야 친구들은 황군이 농담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성교육에 대한 사명감을 느낀 그들은 권씨의 집에 모여서 적나라한 포르노를 함께 감상했고, 그것을 계기로 친구들은 다시 함.. 2021. 10. 29.
당신의 이웃 (3) 김한에게 별명을 붙여준, 아니 그에게 별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사람 중 한 명을 찾아보았다. 그가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중퇴한 이후에도 주기적인 연락의 기록이 남아있는 인연은 집주인 등을 제외하면 네댓 명 남짓. 그 중 한명이자 중고등학교 동창인 권씨를 찾는 일은 어려울 것 없었다. 권씨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조건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한에 대한 첫 기억에서 부터 시작해봅시다.” 김한의 첫인상을 권씨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물론 첫 기억은, 중학교 2학년 같은 반에 배정이 되고 첫 날 담임이 출석을 부를 때 갓 변성기가 지나 적응되지 않은 굵은 목소리로 ‘예에’하고 늘어지게 대답하던 잔상이라고는 하지만, 처음이라는 인상은 시간에만 의존하는 개념이 아니다. 첫사랑을 시간을 기준으.. 2021. 10. 28.
당신의 이웃 (2) 당신도 알다시피 김한은 사람을 죽였다. 아니, 사람들을 죽였다. 대부분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김한의 손에 죽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김한이 사랑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김한은 앞선 문장에 사용된 두 번의 ‘사랑했던’이 ‘사랑하는’이라는 현재형으로 쓰이기를 원했다. 최소한 후자는 판단하는 주체가 김한 본인이니 그렇게 써도 틀리지 않겠지만, 전자의 경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달라. 남겨진 이들이 듣고 있다. 어쨌든 이 글에 쓰인 모든 문장이 옳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김한은 그렇게 생각한다, 즉 그의 손에 죽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이 글은 본래 김한을 담당했던 변호사가 기획한 탄원서에서 시작되었다. 탄원서 원본.. 2021. 10. 27.
당신의 이웃 (1) 김한, 그는 당신의 이웃이다. 평범한 성씨에 조금 독특한 외자 이름을 쓰지만, ‘한이’ 하고 발음할 때 맴도는 울림이 깊지 않아 그다지 기억할만한 이름은 되지 못한다. 학창시절 ‘기만자’라는 별명으로 가끔 불리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썩 자주 쓰인 것은 아니다. 우선은 그에게 단어 뜻대로 남을 기만할만할 특별한 재능이나 성취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초에 친구도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김한 씨는 심심한 사람이었다. 아무런 맛도 냄새도 나지 않아, 인간들의 칵테일에 무던하게 섞여있다 자연스럽게 빠져나오는 그런 머릿수 1이었다. 외모도 성격도 성실함도 딱 중간, 가장 보통의 사람을 찾는 대회를 연다면 7명 중에 4번째 보통이라 메달권에 호명되지 못할 완벽한 애매함이 되려 그의 특별함이다. 다.. 2021.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