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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 놀음 - (A-2) A-2. 아침에는 조깅을 한다. 산책로가 한 바퀴에 4km라 컨디션이 좋을때는 네다섯바퀴를 돌고, 아무리 힘들어도 한바퀴 이상은 매일 달린다. 달리기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운동 중 하나다. 그 다음 가는 것으로는 수영, 테니스, 데드리프트 등이 있지만 아무 장비없이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달리기 뿐이다. 아침 운동 후에는 가벼운 샤워를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출근을 한다. 비대면으로 근무를 할 때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켠다. 회사는 걸어서 30분 거리 이내이고, 주 2회 정도 현장으로 출근을 한다. 일을 한 지는 일년이 조금 안 되었지만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시키는 모든 일을 묵묵히 해낼 뿐이다. 특히 전염병으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진.. 2022. 5. 16.
주사위 놀음 - (C-1) C-1. 세상에는 진리가 있다.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지만 함부로 입 밖에 꺼내지 않는 단 하나의 원리로 세상은 돌아간다. 공공연한 그것을 입 밖에 꺼내어 인정하는 순간 몹시 귀찮아지기 때문에 다들 감추고 있을 뿐.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 알약을 선택하는 것과 같이. 나는 의도치 않게 그 비밀을 어린 나이에 깨달아버렸고,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즉시 떠나버린 내 무지로부터 기인한 안락의 땅이 그리워졌지만, 행동해야 했다. 그 진실은 아마도 당신도 알고 있을 그것이다. 바로, 힘이 센 만큼 더 많은 것을 거머쥘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 물리적인 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살고있는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기초적인 원소로써의 힘. 바로 돈.. 2022. 5. 13.
주사위 놀음 - (B-1) B-1. 세상 미친 놈한테 잘못 걸렸다. 인생이 야금야금 망가지고 있다. 차라리 아주 송두리째 흔들어놨다면 어땠을까. 난 어쩌면 이놈한테 적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날 제 노예로 길들이려고 하는건가? 차라리 돈을 뜯어가지. 내 한심한 이야기는 잘못된 성 지식과 경험으로부터 시작한다. 이게 이렇게 될 일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상상도 못했다. 하 진짜 병신. 제발, 비웃거나 속단하지 말고 끝까지만 들어줘. 난 이미 미쳐버린 것 같으니까. 난 원래 공부를 곧잘했다. 어렸을 적 성적을 유지했다면 서울대도 거뜬히 들어갈만큼. 고등학교 내신 관리도 기타 학생기록부도 나쁘지않게 채웠는데, 수능 날 과민성 대장 어쩌구 때문에 듣기평가 와중에 좋지 않은 신호가 오더니 줄줄이 죽을 쒔다. 차라리 그날 거기서 시원하게 똥.. 2022. 5. 11.
주사위 놀음 - (A-1) A-1. 낭만 오피스텔 705호에는 루저가 산다. 생긴 게 썩 나쁘진 않은데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것 같지 않고 잘 씻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람이 풍기는 기운 자체가 좀 어둡다고 해야하나?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거나 하더라도 혹시나 눈이 마주칠까 움츠려든 어깨와 갸냘프게 참고 있는 숨소리가 신경쓰일 정도로. 내가 그를 특별히 불편하게 만든 건 아니냐고? 나도 모르게 그런 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 보편적인 첫인상이 공격적인 편은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다. 체격이 좋은 편이긴 하지만 팀에서 주로 맡는 업무가 손님 접대인만큼, 나는 사적인 영역에서도 친절함과 선량함을 드러내려고 일부러라도 애쓰는 편이다. 물론 나는 705호 녀석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605호에 살기 때문이다.. 2022. 5. 9.
주사위 놀음 - (0) 0.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누군가 대답한다. 하는데요? 양자역학이 등장해 입지를 다지며 고전 과학의 수많은 개념들이 재정립되었지만, 아무래도 중요한 건 불확정성 그 자체에 대한 것일 듯하다. 모든 것을 관통하는 인과의 법칙이 세상을 움직이고 인간은 다만 관측할 역량이 되지 못할 뿐이라고 믿던 근본적 신앙은, 불확정성 그 자체가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의 일부라고 믿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신은 죽었고, 살아있다면 어쨌든 주사위 놀음은 할 것이다. 그 누구에게나 재미있는 놀이이므로. 불확정성이 세상의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보편적 재미의 요체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힘이 좋은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 수완이 좋은 사람이 신의 주사위 앞에 지저분하게도 엮이게 .. 2022. 5. 6.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8) 8. 축제는 모두에게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을 남겼다. 고생의 양만큼 서로 돈독해진 것도 있었고, 정욱이 축제 외적으로도 많은 신경을 써둔 것이다. 처음 시도되는 연극제이니만큼 서투르거나 아쉬운 부분들이 많을 법도 한데, 그때마다 그것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 이거 제대로 된 카메라로 찍어뒀으면 두고두고 볼텐데’라고 누가 말하니 방송국에서 쓸 법한 커다란 영상장비가 준비된 것이 보였고, ‘연극보다 메이킹필름이 더 재밌을 것 같지 않아’라고 누군가 말하니 현장을 맴돌며 꾸준히 카메라를 들이대던 성중이나 영규같은 친구들이 카메라를 흔들었다. ‘포스터랑 예고편도 만들어서 아주 영화제 같은데 뿌려볼까’라고 말하니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깔끔한 포스터와, 연습 장면들을 적절히 짜집기한 예고 영상이 상영되.. 2022. 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