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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 헌팅 - (6) 6) 우선 아침에는 네개, 점심에는 두개, 저녁에는 세개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내가 어제 산 코인 가격이다. 잠결에 스트롱인지 스트리퍼인지 뭔지하는 코인을 백달러어치 사뒀는데 일어나보니 사백이었고, 지금은 삼백이 되어있다. 이런저런 수수료를 떼고도 이십만원 정도를 벌었다. 업비트에 가입하고 하루만에 쥐어본 수익이었다. 그날도 내 방송에는 다섯 명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았고 후원은 한푼도 터지지 않았다. 그 중 두개는 손님이 조금이라도 있어보이려고 내가 만든 부계정으로 접속한 것이니, 세 명이 다녀간 셈이다. 그 중 마지막 녀석이 퇴장하면서 ‘포람페 뱅온. ㅂㅂ’ 하고 채팅을 치기에 나도 방송을 접고 따라가봤다. 포람페라는 예명은 ‘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의 앞글자를 따온 이름이다. 세가지 스포.. 2023. 4. 11.
(리뷰)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모던클래식 2악장: Leggiero (가볍고 경쾌하게) 1악장의 이야기적 완성도가 너무 감탄스러웠어서, 그걸 두번이나 해낼 수가 있나 기대를 품고 있었다. (아바타의 경우와는 다르다. 아바타는 이야기 자체에 기대를 걸었던게 아니라서.) 결과적으로 1편만큼의 감탄은 아니지만, 추리물 좀 치네 인정할만큼은 되었다. 1편도 리듬이 경쾌한 편이었지만, 2편에는 여유로움과 의도한 유머의 비중이 늘어서 조금 더 통통 튀었다. 1편에서는 전말이야 어떻든 사람이 뜻밖에 죽어나가고 시작한지라 마냥 웃고 떠들기 어려웠지만 2편에서는 역시 전말이야 어떻든 가짜 살인사건을 풀고 예방하면서 흘러갔기 때문에 보다 가벼울 수 있었다. 와중에 현대적인 소재들(어몽어스, 코로나, 인플루언서)을 재료로 잘 가져다썼다. 에드거나 아가사가.. 2023. 4. 10.
래빗 헌팅 - (5) 5) 승수 2층? 아니면 3층? 불 꺼진 왼쪽 집? 용 그림이 그려진 오른쪽 집? 고민하는게 의미가 있나. 아 군자는 큰 길로 가라고 했는데, 난 군자가 아니잖아. 하지만 이제부터 정말 군자로 살건데. 생겨먹은대로 가야해, 되고싶은 쪽으로 가야해? 이제 진짜 정신 차렸는데. 한번의 기회만 더 있어준다면. 나는 지금 무서운 형님들한테 쫓기는 중이다. 잡히면 아마 죽을 것이다. 내 앞에는 사다리가 있다. 들어갈 수 있는 발코니는 네군데가 있다. 넷 중의 무엇이 나를 살릴 수 있는 생문인지 모른다. 아니 생문이 존재하긴 하나. 어쨌든 움직여야해. 가만있으면 살 확률은 0이야. 나는 아무 곳에나 사다리를 걸치고 발코니에 올랐다. 이곳은 온갖 침묵들이 소음을 아득히 덮는 비밀스러운 곳. 인기척이 있는 것은 알고 .. 2023. 4. 8.
(리뷰) 캐롤 기꺼이 나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도록 토드 헤인즈 감독이 사진작가 사울레이터의 작품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퀴어-로맨스영화이다. 다양성이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하던 시대의 레즈비언들을 주인공으로 삼고있다. 감독은 소수자의 시선을 빌어 당연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사랑의 성질을 조명한다. 무너지지도 무너뜨리지도 않고 위태롭지만 꼿꼿하게 균형을 잡는 캐롤의 기개를 빌어 자아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지지한다. 세상의 모든 악하지 않은 어른들을 응원한다. 자뭇 따뜻하다. 사울레이터의 시선은 은근하면서 응큼한 구석이 있다. 구석에 웅크려 몰래 쳐다볼것만 같지만 숨어있는 모습이 꿩이 숨바꼭질하듯하여 피사체가 위협을 느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노골적으로 사적인 영역에 대한 침범을 시도하는 셈이며, 상대가 받아들일 .. 2023. 4. 7.
래빗 헌팅 - (4) 4) 기환 나는 금방 회복했다. 내 몸은 금방 회복되었다. 친구들은 삶의 제자리로 돌아갔고 아내도 잠시간 시무룩했지만 곧 꿈에서 깨어나 일상으로 돌아왔다. 영준이가 가끔 숭숭이 삼촌을 찾는다는 점을 뺀다면 아무런 티도 안났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냉랭했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나간다고 우승이 어디 따놓은 당상이던가. 우승한다고 또 뭐가 크게 달라진단 말인가. 라인장 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나를 노려보거나 피하려는 듯 보였고 후배들마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 정도면 패배한 당사자인 종만이는 얼마나 고달플까 싶어 찾아보니 보이지 않았다. 종만이는 애가 셋이었다. 나와는 비슷한 나이에 아들 키우는 선후배끼리의 정이 있는 막역한 사이였다. .. 2023. 4. 6.
(리뷰) 혼자사는 사람들 인간은 장소에서의 환대를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된다 엄마가 어제 죽었다. 아니 한달 전이었나. 그러나 어쨌든 진아는 계속 일을 하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살았다.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주어진 자신의 일을 잘한다고 해도 세상은 자꾸만 그녀의 세상을 두드린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영속가능하지 않다. 옆집 남자는 필요 이상으로 말을 걸고, 회사는 신입 교육을 맡기는데 이 신입은 또 지나치게 E형에다 F형인 인간이고, 아빠라는 작자는... 죽은 사람이 말은 왜 걸고, 얘는 대체 어떻게 콜센터에 합격을 했으며, 아빠라는 작자는 대체. 혼자만의 조용한 식사를 지향하고 서로 간의 대화를 자제하게끔 하는 미분당은 딱 좋은 식당인데 넌 왜 따라오는데. 혼자사는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고 세상이 .. 202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