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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탑건: 매버릭 Should let go, but not today, all that matter of time. ‘진짜 광기’의 예시로 돌아다니는 톰 크루즈의 짤이 너무 적절해서, 오프닝에서는 ‘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얘는 결정을 마친’ 그 표정 밖에 안 보였고 ‘그런 표정 좀 짓지말라’는 대사가 참 절묘하게 들렸다. 진짜로 결정을 마친 미친 사람이 ‘포드 vs 페라리’를 찍는 장면, 직후에 둥 떨어진 템포로 귀가 먹먹한 장면. 이 영화는 무조건 좋은 음향이 갖춰진 영화관에서 보는게 맞았다. 원조 탑건을 안 봤는데, 봤으면 이것보다 더 재미있었을수도 있으려나?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이 영화는 올드 스쿨의 후속작답게 온갖 올드 스쿨다운 서사기법을 조금의 트위스트도 없이 가져다쓰면서 그 맛의 정수를 뽑아낸다. 너무나도 고.. 2022. 9. 14.
(리뷰) 경관의 피 회색지대 경계선에서의 아름다운 동행 양산형 한국 언더커버 느와르 중에 나름 포지션을 독특하게 잡은 작품인 것 같다. 핵심 플롯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끝까지 회색지대에서 어느 한 쪽으로 몰아붙이지 않은 채로 극을 마무리해 두어서 오히려 깔끔한 느낌이었다. 그것도 현실적인 층위에서 인간의 이중적인 본질을 비추어내느라 회색지대에 둔 게 아니라, 아주 판타지스러운 이야기의 설정만으로 만들어낸 회색지대라 더더욱. 동수, 강윤, 민재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그들의 선택과 행동들이 마냥 옳거나 그르다고 하기는 어렵겠다. 다만, 그들의 목적이 순수했음을 극이 끝날때까지 결국에 부정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그들의 행동이 정당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것임을 또한 알 수 있었다. 강윤의 말대로, 그저 경계선에서 스스로 택한 사.. 2022. 8. 14.
(리뷰)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혐오 진영으로부터 빼앗긴 언어 되찾아오기 vs 4chan (cf. 일베, 2ch)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쓰이고하는 개구리 캐릭터 meme의 모국 문화권에 이런 사정들이 있었는지는 처음 알았다. 이름이 페페인것도, 만화 주인공이라는 것도, 그 뒤에 (당연하게도) 저작권자가 존재하는지 조차도. 9GAG나 레딧 같은데서 불특정 유저들이 그리기 시작한 캐릭터가 퍼진 것이라 대충 짐작했었다. (하기사 케장콘에도 저작권은 있지) 트럼프가 출마한 대선 시기와 맞물려 대안-우파 진영에서 혐오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착취하여, 이 개구리가 혐오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 또한 처음 알았다. 4chan이 그런 성향의 커뮤니티인지도. 보는 내내, 아니 원작자 당신이 선량하고 올바른 예술인인 건 알겠는데, 당신네는 그 유명한 ‘미키마우.. 2022. 8. 13.
여행의 목적 - (7) 完 12일 오후 8시 이반은 워싱턴 주 한복판의 이름도 생소한 오셀로라는 지역에서 의뢰가 들어와 자동차로 편도 세시간에 가까운 주행을 다녀와야 했다. 고인이 평소 그려오던 풍경에 대해서는 잘 알겠노라마는, 이 먼 곳의 조그만 회사 직원을 그곳까지 불러야만 했는가는 의아했다. 고객은 필요 이상으로 까다롭게 굴었고, 이반은 이제 겨우 일을 시작한 지 2주가 된 말단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반이 보내진 것이지만, 그만큼 아는 것도 책임을 질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선배들은 퇴근시간의 교통체증을 고려하지 않고 두시간이면 가는 거리이니 대충 이야기 나누고 곧장 퇴근하라며 그를 보내놓고는 자기들이 전부 정시에 퇴근해버린 채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이반은 거지같은 회사 여차하면 때려치고 만다는 생각으로 멋대로 응대를 시작했.. 2022. 7. 27.
여행의 목적 - (6) 13일 오후 4시 평소였다면 서류작업을 대강 마무리하고 퇴근준비를 할 시간이지만, 오늘은 잔업이 있었다. 잔업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는 불과 몇시간 전까지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었던 몸뚱아리를 수습하고 정리하는 일이었다. 시신은 새벽에 공원에서 발견되었고, 이런저런 조사과정을 거쳐 이반이 속한 팀에게 인계되기까지 대략 열시간이 걸렸다. 시신이 잔업이 되기까지 어떤 물리적인 과정과 행정적인 절차를 거쳤는지 이반은 알지 못한다. 다만 전달받은 것들을 지시받은 대로 처리할 뿐이다. 이반은 장례를 돕는 일을 한다. 주로 자연사한 노인들의 정돈된 그것을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예를 갖추어 마무리하는 일을 맡는데, 때론 지역 경찰들로부터 연락이 올 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아직 때가 되지 않은 이들의 뒤틀리거나 훼손.. 2022. 7. 24.
여행의 목적 - (5) 13일 오후 8시 뜻밖의 일감 때문에 늦어진 퇴근에 지친 이반은 길거리를 헤매이다 처음보는 중식당에서 딤섬을 주문했다. 외관이 깔끔하고 사람이 비교적 적은데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호객을 했고 이반은 배가 고팠다. 주문한 볶음면 요리와 둥그런 딤섬을 받고보니 만두라는 요리가 사람 머리를 본뜬 제물에서 유래했다는 속설이 생각이 났다. 들어찬 고기는 대뇌의 피질을, 잘 가두어진 육즙은 뇌척수액과 핏물을 연상시켰다. 장수의 상징이라는 기다란 면발마저 묻어나온 빨간 양념 때문인지 풀어헤쳐진 사람의 소화계통 장기를 상상하게끔 만들었다. 따지고보면 돼지의 사체를 주재료삼아 요리한 것이니 아주 거리가 먼 망상은 아니리라. 기름진 음식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 허기진 기분에 급하게 음식을 밀어넣었더니 속이 더부룩했다. 정.. 2022. 7. 23.